[차미경의 컬처 토크] 아름다운 소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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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The Island of Cats, 2018)’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하루가 멀다고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고독하게 홀로 죽어간 사람들의 소식을 듣곤 한다. 혼자서 절박한 생계를 이어가다 끝내 잇지 못하고, 혼자서 애타는 희망고문을 견디다 끝내 희망을 보지 못하고, 혹은 늙고 병들어 혼자서 지내다가 ‘고독사’란 이름으로 방치되는 죽음들 말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시대, 특히 고령화 시대의 1인 노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고독사’는 아주 흔한 이슈가 되었다.

“고독사라는 건 그 전부터 고독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도 고독하지 않으면 고독사가 아니다. 혼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익숙한 집에서 늙고, 죽어가는 삶이 가장 만족스럽다.”

지난해 <재택 나 홀로 죽음을 권장>이라는 특별한 제목의 책을 출간한 도쿄대학의 우에노 지즈코 명예교수는 최근 한 기사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흥미로운 주장을 읽으며 문득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다이키치 할아버지를 보면 우에노 교수의 주장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고양이들이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고양이 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마을에 고양이 타마와 함께 사는 다이키치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타마의 나이 6살 7개월, 고양이 나이로는 중년을 넘긴 타마 역시 할아버지와 함께 늙어간다.

영화엔 이렇다 할 특별한 갈등도 박진감 넘치는 긴장도 없다. 그저 느리고 한가한 고양이와 노인의 일상이 반복될 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해주던 음식 맛을 기억해 내며 느릿느릿 직접 만든 음식으로 끼니를 채우고 바닷가를 거닐고 긴 발톱을 깎고… 그런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다 못내 지루해지면 훌쩍 집 밖으로 나가 다른 고양이들과 섬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고양이 타마의 심심하고 고요한 일상 풍경이 내내 그려진다.

그러던 다이키치 할아버지에게도 올 것이 왔다! 홀로 사는 노인에게 가장 두려운 그것,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맞닥뜨리는 죽음, 고독사의 공포 말이다.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고독사할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동네 카페 주인 미치코에게 발견되는 덕분에 할아버지는 병원에 옮겨져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혼자 있는 아버지를 늘 걱정하던 할아버지의 아들은 그 일을 계기로 더욱 섬을 떠나 도시에서 함께 살 것을 강권하지만 할아버지는 차마 타마를 두고 떠날 수가 없다.

다시 혼자 남아 홀로 삶을 살아가는 다이키치 할아버지. 그러나 그의 삶은 우에노 교수의 말처럼 ‘혼자 살아도 고독하지 않은, 고독사가 아닌, 집에서 혼자 맞이하는 죽음’이 완벽히 재현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한 삶이다. 어떤 조건일까?

우선, 친밀하고 두터운 관계망.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쌓아온 시간의 무게만큼 든든한, 함께 늙어가는 동무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그뿐인가.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마을 보건소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고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의사가 정성껏 마을 노인들의 건강을 돌본다. 또 노인들이 작은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마을 카페의 친절한 주인 미치코는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으로 기꺼이 카페 공간을 내어주고 노인들의 벗이 된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또 어떤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길 이벤트로 화려한 미러볼이 반짝이는 댄스파티를 열기도 했는데 소녀 같은 사치 할머니는 그 댄스파티를 마지막으로 행복한 생을 마감했다. 이런 공동체라면 혼자 살아도 고독하지 않은 삶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돌봐주어야 할 고양이 타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한다. 또 아내가 남기고 간 요리 레시피 노트를 완성하는 도전은 그에게 작은 성취감을 안겨 주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생의 커다란 활력이 된다.

그래서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혼자 살지만 고독하지 않다. 언젠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결코 고독사하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 타마와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한가로운 일상을 느리게 이어가다가 어느 날 꽃이 지듯 그렇게 아름답게 소멸해 갈 것이다. 죽은 사치고 할머니가 남긴 고양이를 함께 돌보며 이웃들이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기듯이 마침표로 끝나 버리고 마는 삶이 아니라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스미는 그런 소멸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장애인은 무사히 노인이 되고 혼자지만 고독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소멸해 갈 수 있을까.

시설에 갇히지 않고 소외되거나 배제되지도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좋은 이웃들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작은 성취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혼자 살지만 고독하지 않은 삶을 사는 발달장애 노인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던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다가 무사히 노인이 되어 낯선 요양원이나 병원이 아닌 정든 곳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결코 불행하게 고독사하지 않는 장애 노인의 마지막을 지켜본 적이 있던가?

다이키치 할아버지처럼 사는 장애 노인을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쉽게 만나 볼 수 있다면 장애를 가지고 늙어가는 것이 좀 덜 두렵고 덜 서글플 텐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장애 노인을 만나는 일은 아직 요원한 바람인가 보다.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렇지 타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맞은 봄, 흐드러진 벚꽃길을 천천히 걸으며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타마에게 속삭인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으로, 두려움 없이 생의 마지막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담담한 용기로 늙은 다이키치 할아버지의 남은 삶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모든 노인의 나머지 삶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기를.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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