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적절한 대접 받으며 일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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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가 커피를 따르고 있다. ⓒPixabay
▲바리스타가 커피를 따르고 있다. ⓒPixabay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젊은 여성들이 이야기하며 웃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영이씨 최고, 우리 커피 맛있게 타 줄 거죠? 영이씬 잘 할 수 있어요, 그죠? 하하하”

고층 건물의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직원에게 차를 주문한 두 명의 여성이 과한 칭찬을 쏟아내고 있었다. 분명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또래인데 직원이 장애라는 이유로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태도에 듣는 내가 불쾌했다. 명찰 패용한 걸 보니 장애인 기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였다. 그러면 더더욱 그런 언행은 삼가야 했다.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차이를 차별하지 말자고 아무리 주장해도 현장의 실무자와 종사자들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비장애 딸아이와 장애 아들에게 하는 말투가 많이 다름을 안다. 하지만 이 무서운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엄마, 이번에 한 말은 딱 나한테 하는 억양과 표정이었어. 굿!”

가끔 딸아이의 지적에 ‘내가 그랬나?’ 싶을 때가 있지만 더 가끔 듣는 이런 ‘엄지 척!’은 뿌듯하다.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변하려 한다면 무서운 습관도 달라지지 않을까?

새로 생긴 카페 단골이 된 건 오후 4시에 활동이 끝나는 아들을 데리러 갔을 때,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선한 눈빛 때문이었다. 카페 앞을 지나치기만 할 때는 그저 과묵한 여성으로 보였는데 막상 차를 주문하면서 말을 해 보니 그녀가 지적장애인임을 알았다. 주문이 많아도 침착하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잘 소화했고 포인트 차감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친절하게 잔여 포인트도 알려주는 걸 보면 내가 더 뿌듯했다. 고약한 고객이 지폐를 던지듯 주면 예의를 지키라고 한 마디 쏴주고 싶었다. 주문이 밀려 대기자가 많으면 혹시 빨리 달라고 재촉할까 봐 보는 내내 불안하기도 했다. 다들 잘 기다렸다가 자신이 주문한 차를 들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이런 삶을 살도록 애쓴 그녀의 부모가 아른거린다. 잘 자란 청년이나 몹쓸 사건의 피의자를 보면 그들의 부모가 어떤 마음일까 먼저 생각나는 건 나도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그들의 부모가 어떨 것이라 상상하는 것도 편견인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인간이 교육적 동물이긴 하지만 그보다 타고 태어난 그릇의 크기는 무시할 수 없다. 아들이 장애와 동시에 남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바람은 버린 지 오래다. 들들 볶으며 치료교육에 매진했던 걸 생각하면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지를 알고 내가 태도를 바꾸면서 아들도 나도 일상이 달라졌다. 아들 성향이 공격적이거나 고집이 세지 않아 그나마 따뜻한 지원인을 만난다면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거란 희망도 버리지 않는다.

장애인은 직업 대상과 서비스 대상이 있다고 들었을 때 중증자폐인 아들은 당연히 서비스 대상으로 알고 살았다. 노동권 투쟁의 세월이 바꿔 놓은 우리의 인식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생산만을 위한 노동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노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 그런 사회라면 아무리 중증이라도 서비스 대상이 아니라 직업 대상인 것이다. 직업은 소득으로 연결되니 모두에게 힘이고 희망이다.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확대는 오래전부터 요구되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선 아들은 아직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성인 장애인들은 직장보다 주간보호센터나 평생교육센터 등 하루 대여섯 시간을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낮 활동하는 곳에 다닌다. 직업 체험이나 훈련보다 취미 위주로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오전 오후 프로그램 하나씩 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장애 정도가 다 다르니 그저 보호만 받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장애인고용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는 좀 더 ‘능력’있는 직원을 원한다. 그러니 경증의 장애인들은 제법 갈 곳이 있지만 중증인 경우는 학령기가 끝나면 직장이든 교육기관이든 가지 못하고 ‘집콕’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요즘 같은 취업난 시기에 비장애인들도 일하기 힘든데 장애인들이 어떻게 직장을 가지냐고 말한다. 취업이 힘든 건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기 힘들다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장애인의 취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많은 일자리가 생겨 본인에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과하지 않은 친절로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카페의 그녀처럼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절한 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회를 꿈꾼다. 아울러 아들도 직장인이 되어 첫 월급으로 빨간 내복 사 입은 ‘인증 샷’을 사방팔방 자랑하는 나를 상상하며 웃는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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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famina
2 years ago

넓고 깊고 심층적인 시각과 행동에서 나온 글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