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제주, 한달살이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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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전윤선
▲비양도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일상이 자유로워졌다. 2년 넘은 코로나 시국으로 피로해진 몸과 맘을 추스르는데 여행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바삐 움직이는 그런 여행 말고 긴 시간 나만의 리듬과 속도에 맞는 여행. 도심을 벗어나고 자신이 살던 동네를 벗어나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이여행. 한달살이 여행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느린 호흡으로 안식처가 될 만한 곳을 찾아 나서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다 그곳이 마음에 들면 일년살이로 기간이 늘어나고 마음이 붙들리면 아예 눌러앉아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도 늘고 있고 최근 부쩍 한달살이 여행을 추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달살이 여행을 처음 알게 된 시기는 2천 년도 초중반 인도 여행 때였다. 당시엔 그런 인식이 빈약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도 타르사막 종단 여행을 끝내고 자이살메르 인근 “쿠리” 라는 마을에서 며칠 머물게 됐다. 그때 숙소에서 만났던 여행자 중 일본인 여행자와 유럽인 여행자도 있었다. 유럽인 여행자는 “쿠리”에서 6개월 이상 머물며 낙타까지 사서 사막을 종횡무진 휘졌고 다녔고, 일본인 여행자는 한 달 넘게 쿠리에 머물고 있었다. 쿠리는 작은 마을이어서 크게 볼 건 없는 동네다. 단지 사막에서의 썬셋포인트가 일품이라 현지 사람도 단체로 와서 사막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함성을 지르며 인증만 찍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그런 여행지 이었다.

사람도 없고 한가한 그런 여행지가 뭐가 매력 있다고 한 달을 넘게 머물러 있는지 당시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유명 관광지 포인트만 찍고 바로 떠나 버리는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오래도록 머물며 여행자의 시계추를 느리게 돌리는 여행 이었다. 나태주의 시 “플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처럼 여행지에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머물며 보아야 사랑스럽다. 한달살이, 일년살이 여행이 “풀꽃” 같은 그런 여행이다.

한달살이 여행지 중 제주만 한곳이 또 있으랴. 장애인도 한달살이 하는 여행족이 늘고 있다. 장애인이 한달살이 여행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다양하다. 편의객실이 있는 숙소, 접근 가능한 이동수단, 자신의 몸에 맞는 보장구, 접근 가능한 식당, 화장실, 여행활동을 지원할 트레블 헬퍼 등…….

여행 전 준비는 철저히 할수록 한달살이 여행의 부담은 내려가고 즐거움은 올라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각할 수 없다. 우선 한달살이에 동행할 지원인력 섭외다. 활동 지원인력은 한 달 동안 동행해야 하므로 마음 맞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다. 지원인력이 없으면 여행하지 못하거나 미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로망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니 방법을 모색해 버킷리스트 실행을 추진한다. 제주도에도 활동지원사 연계할 수 있는 중계기관이 여러 곳이 있다. 제주IL센터 서귀포IL센터, 장애인 부모회, 장애인복지관 등에 의뢰하면 지원인력 연결이 가능하다. 활동지원인과 별도로 여행지를 다닐 때 가이드와 헬퍼 역할을 병행하는 트레블 헬퍼도 있다. 트레블 헬퍼는 유료이며 제주 장애인 전문여행사 “두리함께”에 의뢰하면 연결이 가능하다.

편의객실이 있는 숙소도 한 달 살에 필수 항목이다. 요즘 숙박업소는 편의객실이 갖춰진 곳이 많지만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한참을 알아봐야 한다. 그중에 장애인이 편의객실이 있는 숙소를 몇 곳을 소개하자면 먼저 제주 엘린호텔이다. 제주도청 바로 아래쪽에 있어 찾기도 쉽다. 규모는 작은 호텔이지만 편의객실이 4개나 있고 발달 장애인이 객실 클린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회적 기업 호텔이다.

엘린호텔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조화롭게 근무한다. 장애인 직원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철저한 교육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쉬는 날에도 호텔에 나와 업무공간을 둘러보고 갈 정도라고 한다. 장애인에게 직업이 있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는 증거이다.

엘린호텔을 좋아하는 까닭은 또 있다. 발달장애인 직원의 객실 클린 서비스는 여느 호텔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편의시설 또한 짜임새 있다. 수직형 리프틀 설치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편의를 제공한다. 장애인 주차장과 전동휠체어 급속 충전기, 수동휠체어도 비치돼 있다. 제주 무장애 여행 정보도 제공하고 있어 정보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제주에 접근 가능한 객실이 있는 숙박업소는 늘고 있지만 장애인 직원이 이렇게 많이 근무하는 곳은 드물다. 그 많은 숙박업소 중 편의객실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해야 한다. 엘린호텔은 홈페이지에 편의객실 정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편의객실 유무에 따라 호텔 이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 여행 시 숙박 걱정 덜어주는 ‘호텔엘린’ 은 그래서 참 좋은 호텔이다.

▲저상시티투어버스 ⓒ전윤선
▲저상시티투어버스 ⓒ전윤선

엘린호텔 근처에는 제주 시내권 여행도 가능하다. 가장 손쉽게 여행할 수 있는 저상시티투어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제주저상시티투어버스는 두 대가 한 시간마다 운행해 휠체어 사용 여행자도 제주시 핵심 여행지를 이동에 걱정 없이 가능하다.

제주공항 1층 2번 출구 앞에서 출발해 제주버스터미널, 제주시청,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사라봉, 크루즈여객터미널, 제주연안여객터미널, 김만덕객주, 동문시장. 관덕정(목관아), 탑동광장(제주해변공원), 용연구름다리, 용해로(용두암)를 지나 어영해안도로, 도두봉(해안로), 이호테우 해수욕장, 제주민속오일장, 흑돼지식당가, 한라수목원, 노형오거리, 메종글래드호텔입구(신라면세점), 제원아파트를 지나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저상시티투어버스 경사로 ⓒ전윤선
▲저상시티투어버스 경사로 ⓒ전윤선

코스가 환상적이어서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휠체어 좌석은 하나뿐이어서 아쉽지만 그럼에도 이동 걱정 없이 온종일 핵심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운행 시간은 오전 08:00~18:00까지이고 막차는 오후 4시에 출발한다. 2시간 배차간격에 두 대가 1시간마다 운행하고 쉬는 날은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이다. 한 번만 타는 1회권은 3천 원이고 장애인 2천 원이다. 종일 타는 1일권은 1만 2천 원에 장애인은 할인 적용해서 6천 원이다.

시티투어버스 여행은 종일 여행해도 모든 코스를 다 둘러보기 불가능하다. 여행지가 근방에 있는 곳도 많아 한 곳에서 내리면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제주 공항을 출발한 시티투어 버스 첫 번째 코스는 제주 버스터미널이다. 제주버스터미널은 서귀포와 성산, 한림과 고산 등 제주도 전역을 연결하는 횡단 도로와 일주도로 중산도로로 연결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많지 않아서 시티투어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다.

이번에 정차할 여행지는 탐라장애인복지관 앞이다. 이곳은 젊음과 낭만, 개성이 넘치는 자유의 거리이다. 이색카페들과 소품점, 패션숍, 라이브 카페, 클럽까지 젊음의 열기로 가득한 곳이다. 맛집도 모여 있어 여행객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장애인 복지관이 시티투어버스코스에 포함된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장애인에겐 타지역 복지관도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편의시설이 갖춰진 장애인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핫한 여행지라도 장애인 화장실이 없으면 그곳은 장애인에게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탐라장애인 복지관이 있는 두 번째 코스는 무장애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이번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다. 제주의 옛 생활 터전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제주자연사박물관은 제주 특유의 자연사에 관한 전시물들이 재현돼 있다. 박물관답게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제주시티투어버스 여행코스는 다양한 관광자원을 짜임새 있게 활용했다. 다시 시티투어버스를 탔다. 이번엔 사라봉 산지등대이다. 사라봉에서 보는 붉은 노을이 온 바다를 물들이는 광경을 “사봉낙조”라고 한다. 제주에서 사라봉 낙조는 경관이 뛰어난 “제주10경” 중 한 곳이다. 산지 등대는 대한민국에서 아름다운 등대로 꼽히기도 한다.

다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김만덕 객주에서 내렸다. 김만덕 객주는 초가집으로 만들어진 작은 민속촌이다. 김만덕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11살에 기녀가 됐다. 제주목사에게 찾아가 부모를 잃고 가난으로 기녀가 된 것을 호소하여 기녀 명단에서 삭제되고 양녀로 환원되었다. 이후 김만덕은 객주 집을 차리고 제주 특산물을 한양 등지에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제주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육지에서 곡물을 사들여 나눠주고 관가에도 보내어 구호곡식으로 쓰게 했다. 이러한 선행으로 정조는 김만덕에게 내의원 의녀반수직을 제수했고 영의정 채제공의 주선으로 금강산을 유람했다. 김만덕 객주는 관람 동과 체험 동으로 구분돼 있다. 체험 동에서는 해물파전과 국밥, 몸국 등 제주 토속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김만덕 객주 옆에는 동문시장이다. 동문시장은 제주를 대표하는 핵심 여행지이다. 원도심 내에 있는 동문시장은 오랜 역사가 있는 제주 최대의 상설 재래시장이다. 계절별로 제주 특산품을 착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여행객은 꼭 한 번씩 둘러보는 시장이다. 평일에도 발 디딜 틈 없지만 주말과 휴일엔 인파를 뚫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여행객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어지간한 용기 아니면 이내 포기 하고 만다. 야시장엔 각양각색의 먹거리로 음식 태평시대를 맞고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탑동광장인 제주해변 공원에서 내렸다. 제주해변 공원은 제방을 쌓아 만든 공원이다. 사람들은 제방 위를 유유히 산책하고 편하게 앉아 치맥을 즐긴다. 해변공원은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이 곳곳에 있어 휠체어 사용 여행객도 공원 어디든 접근할 수 있다.

해변공원 다음은 관덕정인 “목관아”이다. 보물 22호인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관덕정은 조선시대 군사들이 훈련하던 장소로 옛 건물인데도 접근성이 괜찮은 곳이다.

제주에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저상시티투어버스 여행이 새삼 즐겁기만 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용연 구름다리에서 내렸다. 용연 구름다리는 제주도의 야간 산책로 사랑받은 곳이다. 용연이 걸쳐 있는 구름다리는 오색 불빛이 용연 양쪽을 따라 형성돼 있고 절벽 곳곳을 수놓은 조명 등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용연과 용두암, 용해로는 근방이라서 시티투어버스를 다시 타지 않고도 휠체어로 산책하며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다음 편에 계속……

한달살이 여행 팁

▶교통이용

  • 여객선 이용: 목포항, 완도항, 진도항, 부산항, 인천항 삼천포항 등 승용차 선박 가능, 휠체어 이용자 승선 가능, 선박내 편의시설이 갖춰진 식당, 카페 및 장애인 화장실 /씨월드고속훼리
  • 하늘길: 제주공항
  •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장콜): 전화 1899-6884, 문자접수 010-6641-6884, 다인승 차량 1대 운행
  • 제주시티투어: 전화 064-741-8784~5, 제주시 첨단로 213-65 제주종합비즈니스센터 3층

▶접근 가능한 숙박

  • 호텔 엘린: 객실 편의객실 4개, 전화 064-743-560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은남1길 4
  • Hi제주호텔: 객실 편의객실 1개, 전화 064-796-800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일주서로 5125
  • 삼달다방 게스트 하우스: 객실 편의객실 다수 및 모든 건물 접근가능, 전화 010-2565-649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신풍로 95-24

▶보장구 대여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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