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겨울 피난처 ‘일월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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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저수지 ⓒ전윤선
▲일월저수지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겨울에는 야외 활동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겉옷으로 중무장해도 칼끝 같은 찬바람이 온몸 찌르듯 파고든다. 겨울철 면역력 증진을 위해서라도 햇볕 샤워는 필수이기 때문에 야외 활동을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추위 피난처 여행지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온몸을 핫팩으로 도배하고 야외 활동과 실내 활동이 적절히 어우러진 무장애 여행지로 찾아 나섰다.

겨울 볕이 사랑스러운 날, 최근 개장한 일월 수목원으로 향했다. 일월 수목원은 열대 온실과 야외 마당 비율이 좋은 곳이다. 춥다 싶으면 한여름을 경험할 수 있는 열대관으로 후딱 들어가고, 덮다 싶으면 겨울 풍경이 고요한 야외 마당에서 산책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냉탕과 열탕을 오갈 수 있는 찜질방 같은 느낌이 충만한 곳이다. 찜질방 가기 쉽지 않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괜찮은 곳이다. 두 계절을 한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일월 수목원은 겨울에 제법 잘 어울리는 무장애 여행지이다. 한겨울이지만 다행히 기온이 올라 볕도 온화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먼저 마중한다.

일월 수목원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연을 시민의 일상으로 들여놓는 수원시의 생태 랜트마크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도심형 거점 수목원이다. 수목원은 방문자 센터에서 매표 하고 들어가야 한다. 중증장애인은 동반 1인까지 무료입장이다. 무료입장이지만 표를 가지고 들어가야 수목원으로 입장 가능하다. 방문자 센터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매표소, 카페, 가든숍, 물빛누리홀(로비), 햇빛정원(썬룸), 식물학자의 방(전시실), 식물상담실, 수유실, 장애인 화장실까지 편의시설이 양호하다. 벽면은 통유리창이어서 야외 수목원이 훤히 보인다. 카페의 음료와 케이크는 수제품이어서 유독 맛이 좋다. 수목원에서는 고품격 문화와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정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야외 수목원 입장은 티켓을 확인하고 게이트를 통과하면 나갈 수 있다. 게이트를 빠져나오면 통유리 건물의 열대온실은 추위 피난처로 딱 좋다.

▲열대온실 ⓒ전윤선
▲열대온실 ⓒ전윤선

온실 안으로 들어서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안경 유리를 덮쳐 앞이 보이질 않는다. 잠깐 멈춤으로 안경의 김 서림이 싹 가셨다. 겉옷으로 중무장한 몸은 둔해지기 시작해 겉옷을 벗지 않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갑옷 같은 옷을 벗어 휠체어 등받이에 걸고 온실 탐험에 나섰다.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온실 안은 열대지방 어딘가에 온 듯하다. 벤치 옆에는 포인세티아가 붉은 색을 뽐내고 있다. 관람객은 벤치에 앉아 꽃과 사진을 찍으며 한여름의 더위를 만끽 한다. 온실 안 꽃들은 색깔도 다양하다. 연분홍의 호주 매화는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작고 예쁘다.

▲부겐빌레아 ⓒ전윤선
▲부겐빌레아 ⓒ전윤선

보도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언덕에 완만한 경사길이다. 이 길에는 열대 우림에서 자생하는 ‘부겐빌레아’ 넝쿨 식물이 피어 있다. 꽃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부갱빌(Bougainville)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이라고 착각하는 부분은 포엽이라는 ‘꽃을 싸고 있는 잎의 구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진짜 꽃은 정중앙에 숨어 있는 수술 같이 생긴 것이다. 잎이 꽃보다 화려하고 색깔도 고우니 착각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굳이 찾아보거나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것들 천지다. 장애인 정책이 그렇다. 아니 찾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선거 때면 장애인 표를 사려 온갖 감언이설과 장애인을 앞세워 착한 정당이나 후보처럼 보이기 위해 정책을 다 해줄 것처럼 약속해 놓고 막상 임기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는 것 같다. 게다가 임기가 끝날 때쯤 공약 이행률을 보면 공수표에 불과한 것투성이다.

완만한 경사 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유럽의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휴게시설도 있다. 하얀색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돼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2층을 둘러보고 이번엔 편의시설 모니터링 겸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완만한 경사 길에 승강기까지 마련돼 있어 보행약자의 이동 동선을 고려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정도면 칭찬해도 무방한 곳이다. 승강기에서 내리면 작은 연못이다. 연못 안에는 천적이 없는 금붕어가 여유 있게 헤엄치며 자유를 만끽한다. 열대관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워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어찌나 시원한지 신선한 겨울 공기를 마구 마시고 겉옷을 다시 입었다. 데워진 몸도 식힐 겸 야외 마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돌을 탑으로 만든 조각품이다. 이 돌탑은 이영미술관에서 기증한 한용진 작가의 작품이다. 일월 수목원 곳곳에는 석재 조각품이 수목원의 품격을 더한다.

▲열대관내 작은 연못(좌)과 故한용진 조각품(우) ⓒ전윤선
▲열대관내 작은 연못(좌)과 故한용진 조각품(우) ⓒ전윤선

바로 옆에는 작은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은 휠체어 탄 사람이 접근하기 곤란할 정도로 바닥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자연에 양보하기로 하고 데크를 따라 다산정원으로 갔다.

다산정원은 조선시대 건축물로 조성됐다. 그러고 보면 수원과 다산은 관계가 깊다. 수원화성 축성이 한창이던 시기, 정약용은 한양 명례방(현, 남대문 1‧2가)에 살았다. 이때 아침저녁으로 거닐만한 정원이 없어 자신의 집 뜨락 반 정도에 정원을 조성해 화분을 놓고 대나무로 난간을 둘러 정원의 명칭을 ‘죽란사’로 지었다. 죽란사 정원에는 석류와 매화나무, 치자나무와 금잔화도 심었다. 파초와 국화 등도 심고 가꾸며 정원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정약용은 평생에 걸쳐 정원을 조성하고 정원 생활을 즐긴 정원가이기도 하다. 다산정원은 당시의 기록인 죽난화목기에 나오는 식물을 주제로 화분을 배치했다. 다산정원은 수원의 역사성과 다산의 철학을 담은 한국 전통 정원이다. 정자의 단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다산의 시간과 겹치는 느낌이 좋은 곳이다. 다산은 정원을 거닐며 시조를 짓기도 했다. 늦겨울 매화꽃이 필 때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매실이 열리는 초여름에도 만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한 시조도 있다. 올해는 22대 총선이 있는 해이다. 하지만 지난 21대 국회의 장애인 공약 이행률은 매우 낮다. 이들은 지키지 못한 약속에 부끄러워하기는 할까.

▲다산정원 ⓒ전윤선
▲다산정원 ⓒ전윤선

일월 수목원은 일월 저수지와 낮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습지도 잘 조성돼 있다. 습지원은 습지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정원이다. 요철이 많은 수변 형태와 수심 환경을 활용해 다채로운 습지의 환경을 구현했다. 습지정원 옆에는 빗물정원도 있다. 습지와 빗물은 잘 연결된 체인 같다. 비가 와야 습지가 조성되고 습지가 있어야 그곳에 사는 생명들이 살아간다. 빗물정원은 도심 속 빗물을 재활용하고 물의 순환을 촉진해 생태적 의미를 일깨운다. 수목원 주차장 등에서 수집된 빗물의 수질을 정화해 재활용하고 물의 순환 과정을 전시하는 생태적 의미를 가진 정원이다.

바로 옆 산채원 정원에서는 맛있는 여행도 할 수 있다. 산과 들에서 나는 다양한 식용과 약용 식물의 관상적 가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도시 텃밭정원이다. 일월 수목원은 코스별 도장 깨기 여행에 좋은 곳이다. 정원마다 다양한 테마가 있어 지루하지 않고 풍경이 주는 넉넉한 감성이 돋보인다.

무장애 여행은 의식에 깊게 박힌 부정적인 생각을 정화하고 자신감을 향상하는 자기암시다. 일상에서 쭈뼛대던 마음을 내려놓고 꾸임보다 여백을, 채움보다 비움이라고 속삭인다. 세상에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고 부정적인 기운을 걸러내는 필터링이 무장애 여행이다.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1호선 화서역 6번 출구(경기도 교통약자 광역이동지원센터 전화 1666-0420)
  • 접근가능한 식당: 방문자 센터 내 카페
  • 접근가능한 화장실: 방문자 센터 내. 열대온실 내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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