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위를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0
78
위를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위를 보면 보라는 절규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라는 것이다. ⓒ 영화 ‘돈 룩 업’ 포스터 재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위를 봐!(Look Up!)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영화 ‘돈 룩 업’의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혜성과의 충돌로 멸망을 앞둔 인류에게 외친 이 절규는 뭐, 굳이 위를 보지 않아도 된다(Don’t Look Up!)는 논리에 가뭇없이 묻힌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국의 한 천문학과 대학원생과 교수가 지구로 돌진해 오는 혜성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혜성과 지구가 충돌하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국가는 귀담아듣지 않고, 언론은 한술 더 떠 이들을 조롱하는 등 혜성 충돌이라는 진실은 감춰진다. 우여곡절 끝에 핵폭탄을 사용해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로 했지만, 이조차도 혜성의 광물자원을 노리는 사업가의 제안에 막히고 지구는 멸망한다.

‘위를 보라’와 ‘위를 보지 말라’는 상반된 두 개의 메시지는 지극히 상투적인 갈등을 유발한다. 그런데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혜성이 지구로 다가서고 있다는 진실을 아는 것과 알아도 소용없는 진실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은 진실에 대응하는 가치 선택의 문제로 환원된다. 양극단의 메시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를 위한 선택의 문제여서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만큼 첨예하게 대립한다. 곧 도래할 삶의 마지막 시간을 알게 됨으로써 남은 시간을 어떻게 누구와 보낼 지 사람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인공의 주장과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칫 사회적 혼란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국가의 우려는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두 개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혜성과 지구의 충돌처럼 부딪친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등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 권리를 점진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결정도 민주주의 체제이기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가 공동체의 부담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개인과 공동체 간의 가치 선택의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계에서나 가능한 갈등이긴 하다. 인간이 문명을 이룬 이후 전 세계가 민주주의를 ‘국가’라는 공동체의 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성립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체계가 강화될수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 또한 점진적으로 동등해지고 있다. 그런데 ‘점진적으로 동등해지고 있다’는 기만적인 상황은 같지는 않지만 조금씩 같아지고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최소한의 타협을 제시하는 전략적 선택일뿐 미래를 향한 희망의 약속은 아니다.

공동체의 막연한 약속은 주로 ‘선거’라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뤄지기 마련이고 올해가 최선의 호기(好期)였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한 달 터울로 있었던 때문인데 그 결과는 처참하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장애인 정책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아젠다’가 정해졌다는 소식 대신에 현실정치의 틈바구니에서 마치 별책부록처럼 한두 줄로 축약되어 희미한 윤곽으로만 남았다. 선거 기간 동안 매일 봇물 터지듯 발표된 그 무수한 정책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과정의 지난함과 부조리를 일일이 들춰내고 비판하기에도 지칠 만큼 우여곡절과 자가당착이 지천이었다. 정치세력의 이해득실에 따라 뭉치다가도 흩어졌고, 흩어지면서 서로를 힐난했다. 정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기도 했고 기왕의 제도를 재탕해 내놓기도 했다. 당사자들의 기대는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실망이 되고 마침내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복지서비스의 대상 기준에 자신의 장애를 욱여넣거나, 항간에 떠도는 복지서비스 대상이 되는 절묘한 방법을 공유하며 ‘센터’를 기웃댄다. 그마저도 탈락하거나 장애 증명에 지쳐 포기한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체념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위를 보라’는 메시지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봐야 할 사람들의 시선은 매번 다른 곳을 향한다. 그렇게 모처럼의 기회는 짙은 먹장구름 속으로 시나브로 묻히고 차디찬 빗줄기에 젖고 있다.

장맛비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익숙한 계절 손님이긴 한데, 요즘 겪는 장마는 왠지 낯설다. 바람이 주인행세 하듯 기승인 한낮에는 시르죽은 듯 잠잠하던 비는 새벽녘에 가서야 거세게 쏟아붓곤 한다. 먹장구름이 잔뜩 엉킨 검은 하늘은 잔뜩 물을 먹어 힘에 겨운 듯 낮게 드리워져 있다. 당장이라도 왈칵, 빗줄기를 쏟아낼지도 모를 하늘을 우두망찰 쳐다보던 한 사람이 문득 가쁜 숨을 토해내듯 외친다.

제발 위를 보라구!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승인
알림
66372190009bb@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