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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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사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더인디고
▲휠체어 사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더인디고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사람도 차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조용한 동네인데 어김없이 길은 이어지고 그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깨끗하게 포장된 길도 있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도 있지만 길이 끊어져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은 본 적이 없다.

‘일 년에 자동차 몇 대, 사람 몇 명이나 지나갈까?’가 궁금할 정도로 외진 곳이지만 길은 언제라도 올지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기다리고 있다. 때때로 집에 닿아서 끝나는 길도 있고 산에 닿아서 끝나는 길도 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길일 필요 없는 목적지이기에 그런 것이지 더 가야 하는데 길이 없는 것은 쉬이 볼 수 없다. 나도 오늘 그런 길을 달렸고 또 다른 이도 이따금 그 길을 지나게 될 것이다. 혹 누군가 방향을 잃어 낯선 그곳에 의도치 않게 들어서더라도 길이 있기에 그는 돌아갈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넓게 뻗은 대로를 달리기도 하고 천 길 낭떠러지를 접하고 있는 고갯길도 지나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논밭 사잇길도 지나면서 누군가 살아온 길도 이런 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때로는 나는듯한 날들만 계속되는 삶이라면 걱정도 없고 슬플 일도 없겠지만 살다 보면 좁은 길도 만나고 위험한 길도 만난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길처럼 길이라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지만 더 이상 나아갈 곳 없는 막다른 벽 앞에 있는 심정도 마주하게 된다.

태풍으로 폭우로 살 곳을 잃고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로 나온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아프겠지만 그들도 내일부터는 또 다른 길로 삶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수많은 날 앞에 우리는 그들에게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혹여라도 그들 앞에 펼쳐진 날들이 길 없는 산을 오르거나 다리 없는 강을 건너는 마음은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보는 오늘이다.

재난을 당하더라도 장애를 가지더라도 가진 모든 것을 잃더라도 우리는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길을 걷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그것이 언제인지 그 길을 이용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길이 그런 것처럼 삶의 길도 어디에나 있어야 하고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오르막을 오르더라도, 방향 모를 길을 헤매더라도, 불 꺼진 밤길을 걷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면 다시 큰길로 나올 수 있다. 우리네 사는 길도 그랬으면 좋겠다. 막다른 길 걱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어디론가 이어지는 길 정도는 어디에나 있는 그런 삶이 모두에게 보장되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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