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마음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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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위 ⓒ픽사베이
▲사실과 허위 ⓒ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작은 아이들과의 대화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사탕 사줄게!”라고 말하면 사탕을 사줘야 하고 “공주처럼 예쁘네”하면 스스로 온전히 공주가 된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사랑하는 것이고 “미워!”하면 바로 상처받는다. 어른들끼리 대화하듯 “밥 한번 먹자!”라든가 “우리 곧 또 만나!”라는 영혼 없는 대화는 아이들에겐 막연한 기다림이나 배신감이 된다. 예의나 에티켓이라고 합의한 어른들끼리의 습관적 거짓말에 익숙해진 우리는 종종 아이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지만 솔직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대화이다. “인형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줄게”라고 말했으면 그냥 사주면 되고 그때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사주지 않을 수도 있으면 애초부터 “선물은 엄마 기분 좋을 때 사줄 거야”라고 말하면 된다. “나중에 해 줄게”가 말하는 미래는 언제인지 “집에 가서 해 줄게”가 말하는 그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인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부리는 투정은 아이들에겐 정당한 저항이다.

학교에 들어가고 글과 말의 맥락이라는 걸 배우면서 우리는 “내가 살게”라고 말하고 끝까지 카드를 꺼내지 않는 사람도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정치인이 행하는 기행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착하게 생겼네”라는 예쁜 말이 딱히 기분 좋지 않은 말이라는 것도 “완전 미쳤네!”라는 말도 때에 따라 극단의 칭찬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체득하게 되었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쯤부터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해요”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뭐든 다 사줄게”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너밖에 없다!”라는 친구의 말도 마음의 큰 동요를 일으키게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몸이 크고 나이를 먹으면서 말과 글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단단하게 훈련되었고 많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윤활유 같은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부장님 존경합니다!”라는 말과 “어르신 참 곱네요”, “오늘 강연 정말 멋졌습니다”라는 말은 진심이 아닐 때도 있지만 솔직함을 참아냄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서로의 이득이 현저히 크므로 나쁜 거짓말이 아닌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 말들은 나에게 있어 100%의 진실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대가 알게 되더라도 큰 배신감이나 상처를 가지지는 아니므로 죄책감 같은 것도 가지지 않는다. 덕분에 밥 한번 먹기로 한 사람도 조만간 보자고 한 사람도 수십 수백 명이지만 구체적으로 옮기려는 큰 의지는 많지 않다.

어른과 어른이 만나는 결혼이란 것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도 사회생활에서 배운 언어기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하늘에 별도 따다 줄게! “세상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를 사줄게!” 해 주고 싶은 맘은 진심이었지만 상황과 맥락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다 괜찮을 줄 알았다. 흘러 지나가고 잊히면 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예상 밖의 서운함이 돌아왔다. “미워요” “서운해요”라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어른들의 언어로 최선을 다했는데 이전에 겪지 못한 반응이 돌아오니 나도 서운했다. 설명하고 이치를 따지고 토론하고 다투려고 했다.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아내가 서운해 하는 점은 내가 별을 따다 주지 못 해서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를 사 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아내의 언어는 생각보다 많이 복잡했다. 분명 밉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랑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서운하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같이 있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집중하지 않았고 어떤 것이 옳은지 쓸데없는 논리를 찾고 있었다.

난 아내를 대하면서 어린아이를 대하듯 표현되는 언어 자체에만 반응했다. 아내를 대하면서 진실 없는 사회성을 발휘했다. 안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의 대화에서는 단어 자체가 아닌 맥락도 아닌 그것들을 넘어서는 마음을 읽어야 했다. 때로는 그냥 들어주는 것, 또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대화를 복잡하게 만든 건 마음 읽는 대화를 하지 못한 나의 실책이었다. “서운해요!”라는 말은 “좀 더 사랑해 주면 좋겠어요.”로 들어야 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세요”는 “나랑 데이트도 하면 좋겠어요”로 들어야 했다. 아내의 언어엔 나를 속상하게 하려거나 나와 다투려는 의지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내가 그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 서운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릴 땐 그런 나의 맘을 부모님이 읽어주셨고 조금 더 컸을 땐 친구들이 알아주었다. 어린아이처럼 직설적이지도 않고 직장동료들처럼 맥락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을 읽는다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대화할 수 있다면 어린아이와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좀 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탕을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선물을 해 줄 수도 있었고 밥 한번 먹자는 상투적인 인사 대신 상대가 힘들어했던 고민을 기억하고 안부를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었다. 내가 그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그들과 가까워지는 일은 마음을 읽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가고 싶다는 말이 “가지 않으면 좋겠어요”일 수 있고 배가 부르다는 말은 “다른 것을 먹고 싶어요”일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마음을 읽는다면 생각보다 쉬워진다. 오늘은 아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보아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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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7935@hanmail.net'
유금순
26 days ago

공감합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말없이 견디다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싶은 어떤 상황에서 분개하거나 힘들어 하는 남편이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서로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살아가고 있어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유와 성찰을 잉크 삼아 한 자 한 자 쓰신 글이 때마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