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생트샤펠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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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후기 고딕양식의 생트샤펠(Sainte-Chapelle) 성당 내부 이미지. ⓒUnsplash
▲프랑스 후기 고딕양식의 생트샤펠(Sainte-Chapelle) 성당 내부 이미지. ⓒUnsplash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파리 시테섬에는 14세기 후반까지 시테궁의 왕실 예배당으로 쓰이던 생트샤펠 성당이 있다. 왕실의 사람들만 미사를 드리던 곳이라 그런지 규모가 크지는 않다. 천장과 온 벽을 휘감은 스테인드글라스는 세계 어느 건축물보다 화려하다는 평을 듣는다. 조각조각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꽃의 문양들과 찬란하게 눈부시게 내려앉는 빛의 조각들은 종교가 없는 이들도 절로 숙연하게 만든다.

각자의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는 없으나 그들의 공통적인 목소리 톤으로 볼 때 이곳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추측할 수 있다.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온통 화려함으로 가득 찬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 또한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꼈다. 다만 이럴 때마다 한편 온전하게 즐기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함께한 이들의 친절한 설명과 도움은 나의 감정선을 그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동기화 시켜주지만, 대부분이 시각적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장소에서 때로 나는 외로운 이방인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장애인 할인이나 무료입장 따위의 혜택은 그런 나를 위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생트샤펠을 무료로 입장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때 그것이 내게 주어질 서비스가 없다는 뜻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런 비슷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예쁘지만 불편한 나선형의 계단은 이 건물은 오로지 시각적 아름다움에만 집중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행들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즐거운 듯 입장하는 내 손에 예상 밖의 두꺼운 물건이 주어졌다. 이런 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물건! 그것은 바로 점자 안내책이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전체적인 건물의 모양까지 점자로 그려진 책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모양들을 내 머릿속으로 전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점의 표현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것이 나의 감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눈으로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도 내게 맞는 방법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 대한 관심이자 존중이었다. 그 배려가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더 큰 감동이었다. 내용을 알 수 없는 프랑스어 점자를 읽고 또 읽었던 것도 알아보기 힘든 점자 그림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성껏 만져 보았던 것도 저절로 새어 나온 감사의 표현이었다. 수많은 같음들 속에 존재하는 작은 다름을 존중받는다는 것은 존중받는 이에게는 없어졌던 자신의 형체가 다시금 생겨나는 것만큼의 새로운 존재감이 된다. 아주 어릴 적 어른들 모임에서 내게 주어졌던 어린이 메뉴가 그랬다. 큰 숟가락 큰 젓가락 매운 음식들로 가득한 테이블에서 난 파티의 구성원이 아닌 듯했지만, 작은 숟가락과 포크 그리고 덜 매운 맞춤 메뉴가 주어지는 사건은 어린 나에게도 초대받았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모임에서 한국어 안내를 받았을 때도 그렇겠지만 어느 세미나 장소에서 점자 안내물이나 텍스트 파일이 내게 주어질 때도 비로소 난 동등한 구성원이 되는 감정을 갖는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문자를 주 매체로 사용하고 다른 감각을 주 감각으로 사용하는 난 많은 장소와 상황들 속에서 내게 맞는 자료를 제공받지 못한다. 반복되는 경험들 속에서 나의 이해는 당연한 것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난 온전히 함께 하지 못했다. 단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참고 있었을 뿐이다.

생트샤펠은 군중 속에서 투명 인간이었을 수 있는 나의 형체를 선명하게 그려주었다. 파티에 초대받은 이라면 각자에게 맞는 숟가락과 포크를 제공받아야 하고 세미나에 초대받은 이라면 그에게 적절한 언어자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름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는 오늘을 함께 살아가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형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난 생트샤펠에 진정 함께 있을 수 있었고 그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직접 보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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