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12] 박선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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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남 거제 박선임 지회장이 화요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부모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남 거제 박선임 지회장이 화요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부모연대

[더인디고] 지금까지 저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저는 이전과는 좀 다르게, 제 엄마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올해 63살입니다. 제 바로 밑 남동생이 61살인데, 어렸을 때 뇌염모기에 물려서 발달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살던 동네는 시골이라서 제 남동생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남동생은 엄마와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가 8남매인데, 남매 중에 엄마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제 남동생이었습니다. 해가 지면 남동생은 밖에 나가서 엄마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 고향이 도시화되면서, 엄마와 남동생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남동생은 지역사회에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는데, 결국 어느 날 쓰러졌습니다. 시골 병원에 가니까 대학병원에 가라고 해서, 큰 대학병원에 가게 됐습니다. 거기에 가니까 의사가 “발달장애인인데 무슨 검사를 받느냐. 죽기만 바라면 되지 않느냐”는 무례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낼 건데, 왜 치료를 거부하느냐. 당신 동생 같으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니까, 입원을 시켜줬습니다. 남동생은 집중치료실에 들어가서 4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대학병원에 있다가 시골 병원에 오게 되면서 남동생을 재활병원에 보냈습니다. 당시 우리는 조금이라도 재활이 될 수 있는 바람으로 동생을 보냈는데, 발달장애인은 본인 의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니까, 차츰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나중에는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까지 왔습니다. 그 당시 엄마는 91세였고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니까, 어차피 남동생이 재활도 안 되니까, 엄마랑 한 요양원에 들어가면 어떨까를 형제들이 의논했는데, 걱정되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이 가지는 않을 텐데, 한 사람이 가고 나서 이후에 나머지 한 사람은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였습니다.

그래도 남동생이 그 요양원에 같이 들어가면 엄마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남동생을 요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요양원, 그것도 같은 층에 있다 보니까, 남동생이 엄마를 자주 보게 되면서 그곳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태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우리도 대안으로 혹시라도 두 사람 중 한 명이 먼저 갈 때는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엄마가 먼저 가셨습니다. 엄마가 근 한 달 동안을 무의식 상태에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다른 자식들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남동생만 찾으면서, ‘밥은 먹었냐’, ‘밥은 어떻게 먹고 있냐’, 그렇게 걱정하셨습니다. 엄마가 새벽에 운명하셨는데, 동생한테 엄마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동생 걱정을 하던 엄마를 보면서, 저는 제가 죽을 때 제 자식을 걱정하지 않고 죽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운동해서 우리 엄마처럼 자식 밥 걱정, 먹는 걱정 안 하고 죽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고맙습니다.

– 2022년 11월 8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12차 중에서 –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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