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공부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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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한 학생이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Unsplsh
▲강의실에 한 학생이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Unspl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유명회사 휴대전화 모델만큼이나 빠르게 변한다. ‘선배들과의 대화’라고 이름 짓고 재학생들의 진로에 도움이 될까 하는 행사를 만들어도 몇 해 전 졸업생들과 지금의 아이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다르다.

“외부 수상 실적을 많이 쌓아야 해!”

“독서 기록을 최대한 남겨야 해!”

“자신 없는 과목은 과감히 포기하고 자신 있는 과목의 등급을 높이는 것에 집중해야 해!”

대략 들으면 나름 그럴듯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맞는 조언이었고 지금은 또 소용없는 일이기도 하다. 교내 상이 아니면 생활기록부에 적을 수도 없고 독서 기록도 적는 난의 한계 때문에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몇 과목만 집중적으로 파는 것이 도움이 되는 학교도 있지만, 본인이 목표로 하는 학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5년 10년을 진학 담당 교사로 지내도 내년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세밀하게 자료를 검토하고 두꺼운 책을 보며 공부해야 한다.

선배도 담당 교사도 이러한데 “우리 때는 말이야…” 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으스대는 어른들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오늘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내일에 필요한 도움이 되려면 그 녀석들이 처한 상황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 잘 모르면 그냥 용돈 몇 푼이나 쥐여주든지 그도 아니면 “추운데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하는 일반적인 위로나 응원 건네는 편이 낫다.

사실 우리는 고3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 아닌 누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10년 전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데 나 아닌 누군가가 나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같은 의미로 나 또한 다른 누군가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선배인 척 어른인 척 한마디 조언이라도 하고 싶다면 공부해야 한다.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학생들에게 ‘공부하세요.” 정도의 격려는 건넬 수 있겠지만 그 정도는 하거나 하지 않거나 유의미한 차이 없는 공염불에 가깝다.

길에서도 내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많이도 만났다.

“점자블록을 따라 걸으셔야 해요.”

“버스가 왔어요. 줄을 서서 타셔야 해요.”

“장애가 있어도 노력하면 성공하실 수 있어요. 힘내세요!”

내게 점자블록은 편리하긴 하지만 언제나 그 위에서 걸어야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정류장 앞에 서 있으면 버스가 멈춘 것쯤이야 엔진소리로 나도 알 수 있고 줄을 서서 차례로 올라야 하는 최소한의 교양쯤은 나도 갖추고 있다. 장애 있어도 나름 살만한 세상이란 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굳이 길에서 그 이야기를 안면부지의 낯선 이에게 가르침으로 들을 필요까지는 없다.

확신하건대 그들은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 혹시 어딘가에서 반나절쯤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시각장애인과 함께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험쯤으로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조언하고 가르치려는 것은 우습다. 눈이 보이지 않아 불편해 보이는 내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나누고 싶다면 제발 공부 좀 해라.

시각장애가 무엇인지! 점자블록은 어떤 의미인지! 올바른 안내 보행이 무엇인지! 책 몇 권이라도 보았다면 오늘 그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단지 눈 보인다는 우월감으로 내게 가르침 주려 했던 길거리의 돌팔이 선생들은 수십 년 전 입시 경험으로 고3 학생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꼰대나 다를 것 없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입시정보를 주려면 교사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역시나 공부해야 한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한마디라도 조언 건네는 역할에 욕심 있다면 공부 좀 하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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