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22] ① 진수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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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진수경 사무처장 ⓒ부모연대
▲부모연대 대구지부 진수경 사무처장 ⓒ부모연대

[더인디고]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 4강이라는 이전에 없었던 얼떨떨함에 취했을 때였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준비하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한 아픈 손가락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아픈 손가락으로 찾아온 아들은 다운증후군의 지적장애와 심장과 폐가 아픈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오는 길이 힘들었는지 아주 작고 숨소리마저 약하게 태어났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일주일, 길면 한 달 아주 길어도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었다는 듯 스무 해를 잘 견뎌내고, 올 때처럼 또 갈 때도 어느 날 한순간 우리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처음 아들이 태어났을 신을 욕하고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한 절망으로 눈물과 한숨으로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억울함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자라면서 얼굴에 지어지는 무지개 같은 웃음에 살아가는 힘도 얻었습니다. 때로는 작은 숨소리가 더욱더 작아지는 순간에는 가족 모두가 온 마음으로 밤을 새우고 또 기도하는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20년의 세월을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자람의 시간 속에는 아들과 우리 가족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더라고요. 아들이 다녔던 어린이집, 언어치료실, 미술치료실, 복지관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그 시간 속에는 각자의 아픈 손가락 하나씩은 붕대를 감듯 감싸고 살피면서 속울음을 삼키던 또 다른 엄마와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또 다른 눈물을 흘려주던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우리 곁에 있던 시간, 아들과 나를 위해서 찾아다니고 불러보고 도움을 청하고 물어보던 그 시간을 같이 답해주고 앞서 걸어주던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들과 우리 가족에게 머물렀던 시간이 세상의 원망이고, 고통이고, 슬픔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아픈 손가락의 붕대를 갈아 매어주는 마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웃음도 되고, 힘도 되는 것만으로 우리와 같은 엄마 아빠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압니다. 우리의 엄마 아빠는 늘 다가올 어느 한순간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큰 돌덩이 하나씩을 안고 산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더 강해져야만 합니다.

저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에서 작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 아들’로 불러 주던 엄마 아빠들을 매일 만나고 매일 통화를 합니다. 그렇게 또 저는 우리 아픈 손가락의 이름 앞에 ‘우리’라는 단어를 붙이는 일이 제가 받았던 위안과 힘이 되었던 것처럼, 또 누군가에게 위안과 힘이 되고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제 위치를 지키려고 합니다.

어느 아늑한 방안의 작은 화병처럼, 분위기 화사한 찻집의 작은 그림 한 점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작은 소품 같은 존재로 그동안 느끼고 살았던 고마움에 대해 보답하고자 합니다.

–2023년 1월 17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22차 중에서 –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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