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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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픽사베이
▲피노키오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중2였던 딸 방을 청소하다가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까만 목도리가 보였다. 옷장에 안 두고 왜 여기다 뒀나 생각하고는 잊어 버렸다.

며칠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창밖의 서점 앞 진열대에 잡지 사은품으로 보이는 까만 목도리가 낯익었다. 딸아이 방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양 끝에 수실이 길어서 금방 생각이 났다. 얘가 잡지를 샀나 싶어 저녁에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 서랍 안에 목도리 어디서 난 거야?”

“친구한테 선물 받았어.”

“그래? 누구?”

“응, 윤지한테 선물 받은 건데 왜?”

내 눈을 피하며 딸은 자신의 거짓말을 티 내고 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 이름을 대는 것도 딸의 거짓말을 확신하게 했다.

“윤지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알고 고맙다고 전해라.”

딸은 바로 윤지에게 전화했다.

“윤지야, 너 저번에 나한테 준 목도리 있잖아.”

“응? 내가 언제? 너 뭔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복화술로 딸을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끊으라 했고 딸은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미안해. 잡지 사고 받은 거였어.”

자폐성 장애인 아들과 하루 종일 밖에서 치료교육 다니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던 딸이었다. 거짓말하는 아이로 자랐나 싶어 속도 상하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까 잠시 망설였다. 반성문을 써 오랬더니 수첩을 찢어서 엉성하게 써서 내밀었다.

“진심이 하나도 안 보여. A4 용지 넉 장으로 다시 써 와!”

딸은 오랜 시간을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넉 장의 반성문을 보고 나는 딸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군지 알았고 그 가수가 실린 잡지를 사고는 엄마한테 혼날까봐 숨긴 사실을 알았다. 구구절절 딸의 마음을 읽다 보니 겨우 잡지 하나도 맘 놓고 못 사는 아이로 키운 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끝까지 잡아떼면 어느 정도 선에서 엄마가 눈 감아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믿음을 그렇게 왜곡되게 받아들인 게 너무나도 후회되고 죄송합니다. 만약 이번 일이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그냥 묻어갔다면 저는 어쩜 또 다시 이런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 따위, 다시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일으킨 적도 역시 없습니다. 되도 않는 거짓말로 엄마를 속이려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엄마의 그런 믿음을 이런 식으로 나쁘게 이용하는 일 역시 없을 것입니다. 엄마가 저에게 느끼셨을 실망감과 분노는 죄송하다는 말로밖에 말씀 못 드리겠지만, 두 번 다시는 오늘 저에게 느끼셨을 감정을 안 느끼실 수 있도록 똑바로 행동하겠습니다.”

장문의 글은 반성문의 정석이었다. 반성과 다짐을 보여주는 진심이 보여 딸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리하지 못했던 건 아마도 그 당시 나는 아들에게 집중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점심을 함께했던 지인과 헤어지고 아들을 데리러 복지관으로 향했다.

집 부근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편을 보았다. 점심시간도 지났는데 어딜 가나 싶어 복지관에 도착해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집”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임을 알고 물었는데 10분도 채 안 된 사이 집이라는 답에 깜짝 놀랐다. 이럴 땐 증거를 대야지 싶어 신호대기 중에 찍었던 사진을 전송하니 바로 전화가 왔다.

“자기 내 미행하나? 무서버!”

왜 거짓말하냐고 다그치는 나를 어이없어하며 집에서 점심 먹고 산책 나왔다가 커피 사러 가는 길이었다고 난감해했다. 나는 우리 집 내부만 집이고 남편은 곧장 들어갈 수 있는 집 근처면 집이라고 한다니 서로 생각하는 집의 의미가 달랐다. 아파트 벤치에 앉아 햇빛 받으며 커피 마시는 중에 내가 어디냐고 물어서 당연히 집이라고 한 거였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남편의 거짓말 아닌 거짓말에 20여 년 전 일이 생각나 그날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았다. 말썽 한 번 없이 잘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분가한 딸이 생각나 보고 싶어졌다.

부녀의 거짓말 내용이 오해거나 소박해서 그 일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웃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뜬금없는 전화 받고 놀란 윤지는 당황했겠지만 사실을 알고 웃어넘겼으리라.

지금 생각하니 겨우 열다섯 살 딸아이가 반성문 써 오랬다고 넉 장의 용지에 정성 들여 쓴 것도 기특하고 나의 오해에도 차분히 설명해 주는 남편이 고맙게 느껴진다.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힘을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오늘은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하고 귀한 선물이 분명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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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
11 months ago

중2즈음 엄격한 어머니앞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 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의 매번 들키면서도 그 상황이 되면 거짓말을 하고도 죄책감조차도 안 느끼고 무서운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었지요
그리고 지금은 늙으신 엄마가 제게 거짓말을 하십니다
모범가족의 전형 하진이네 가족들 올곧은 엄마 푸근한 아빠 착한 명진이 귀여운 하진이 그들의 응집이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나 봅니다 ^^

famina@naver.com'
황숙현
11 months ago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