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휠체어 타고 우도 한 바퀴②

0
223
▲검멀레 ⓒ전윤선
▲검멀레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우도를 다시 찾았다. 우도는 작은 섬이 아니어서 휠체어 타고 하루 만에 다 둘러본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와 같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다시 우도에 왔다. 이번 우도 여행 시작은 하우목동항에서 산호 해변과 천진항, 한반도여, 우도봉, 검멀레를 둘러보고 우도 내륙을 거쳐 천진항으로 가는 코스다. 하우목동항은 여전히 붐볐다. 도항선에 내려 여객터미널이 있는 곳까지 꽤 넓은 광장을 지나야 한다. 광장 앞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등 이동 수단을 대여할 수 있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동행한 지원인의 이동 수단으로 전기 자전거를 대여했다. 그래야만 전동휠체어와 보조를 맞춰 우도를 돌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산호 해변을 지나 천진항까지 3킬로 남짓 휠체어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보니 우도에 오면 늘 들르는 뽀요요 카페가 있다. 이곳은 카페와 민박을 함께 하는 곳이다. 성산바다 품에 안긴 뽀요요 카페는 일출봉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치고 있다. 뽀요요 카페는 우도에서 유일하게 숙박했던 곳이다. 편의시설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휠체어 탄 여행객이 숙박할 수 있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뽀요요 펜션뿐이었다. 사장님과 친해지면서 우도에 올 때마다 뽀요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땅콩 쿠키도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됐다. 휠체어 탄 여행객에게 편견 없이 대하는 사장님 내외가 편했기 때문에 인연의 끈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잠시 여유의 시간을 뒤로하고 천진항 쪽으로 휠 라이딩을 다시 시작했다.

▲천진항 풍경 ⓒ전윤선
▲천진항 풍경 ⓒ전윤선
▲천진항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천진항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천진항 쪽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가는 것은 필수다. 천진항 대합실에만 장애인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천진항 대합실 매점 사장님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우도를 여행할 때마다 대합실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필요한 물건도 사다보니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봐도 항상 반겨주시는 사장님이다. 볼일도 마쳤으니 천진항을 지나 해안누리길로 간다. 해안누리길은 찬란한 해돋이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길이기도 하다. 해안누리길은 올레1-1코스이다. 영등환송제를 지내는 돈짓당은 바다를 다스리는 마을 수호신이나 어업의 수호신이라고 불러왔다. 조선시대부터 매년 2월 영등환송제를 지내고 7월에는 백중제, 8월에는 용왕제의 당제를 봉행해 왔다. 우도 일대의 돈짓당은 바닷가의 자리 잡은 전형적인 포구의 해신당이다. 이 포구에는 우도 해양민을 수호해주는 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영등신의 내력을 담은 ‘영등신화’에도 우도가 나와 있다. 우도의 먼 바다 큰 왕돌을 거점으로 오가는 배의 안녕을 챙기던 “황영등”은 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존재였다. 어느 해인가 어부들을 해적으로 부터 구해주고 그 보복으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져 바다에 내던져졌다. 그의 찢긴 사지가 물 흐름에 얹혀 제주 섬에 올라왔다. 제주 사람들은 착한 이인 영등의 희생이 우도 일대를 일주하는 동안 여기저기 마음을 품어 앉은 당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영등당은 지나가는 이들이 돌탑을 쌓아 만든 곳이다. 돌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돌 하나 얹고 이번 여행도 무사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해안누리길은 우도 지석묘와 연결돼 있다. 길 가운데 자리한 지석묘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돌멘으로 불리는 고인돌은 돌배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제주도에는 150여 기의 지석묘가 있다. 지석묘의 재료도 현무암을 사용해 제주만의 특징이 보인다. 지석묘를 지나면 우도 정자다. 이 정자에 얽힌 사연은 다이나믹하다. 휠체어 탄 여행객이 정자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아 착한 정자라는 이름을 붙여줬었다. 그런데 착한 정자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접근하지 못하게 계단뿐인 나쁜 정자가 돼버렸다.

접근할 수 없으니 나쁜 정자로 이름을 고쳐 줬다. 이런 일은 가끔 있다. 기존에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도 리모델링하면서 계단을 만들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허탈하다. 우도에서는 나쁜 정자와 하우목동항 대합실 장애인 화장실이다. 화나는 마음을 우도의 풍경이 위로해 준다. 그래, 나쁜 정자는 그러려니 가뿐히 무시해 주자.

▲개명한 나쁜 정자 ⓒ전윤선
▲개명한 나쁜 정자 ⓒ전윤선

나쁜 정자가 있는 이곳은 올레 1-1코스 4구간이기도 하다. 올레길이 지나가는 곳은 아름다운 풍경이 덤으로 따라온다. 그래서 올레 코스가 좋다. 올레 1-1코스 4구간은 한반도 “여”도 있다. 한반도 “여”는 2백만 년 동안 화산 분출 시 한반도와 비슷한 현무암으로 형성됐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경에 한반도 형체의 바위를 볼 수 있다는데 절벽 가까이에 있어 휠체어 탄 사람은 한반도 “여”를 볼 수 없다. 이 구간의 볼거리는 또 있다. 돌칸이다. 돌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을 지닌 곳이다. 우도에서는 소나 말에게 먹이를 담는 큰 그릇을 “까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섬으로 우도봉 쪽 오름은 소의 머리고, 툭 튀어나온 기암절벽은 소 얼굴의 광대뼈라고 한다. “돌칸이”는 “촐까니”가 와전된 말이다.

돌칸이의 또 다른 볼거리는 비와사 폭포다. 비가 오면 우도봉 근처에 빗물이 흘러 폭포가 된다. 기암절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하얀 물기둥은 바다로 직행한다. 비가 올 때만 만들어지는 폭포를 ‘비와사 폭포’라고 부른다. 비 오는 날 우도봉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지간히 내리는 비가 아니면 비와사 폭포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도봉 아래 풍경은 중독성이 강하다. 우도를 찾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오지만 늘 새롭고 자꾸 보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한참을 풍경에 빠져 이리저리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다가 다음 장소로 발길을 이어갔다.

▲비와사 폭포 ⓒ전윤선
▲비와사 폭포 ⓒ전윤선

우도에서 찜해둔 곳도 돌칸이 쪽 언덕이다. 이 구간은 올레 1-1코스 5구간으로 우도봉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코스다. 봄에는 검은 현무암으로 담장을 친 밭에 청보리가 춤추고 유채꽃 물결이 금상첨화인 곳이었다. 새파란 성산포 앞바다에 일출봉이 정점을 찍었다. 그 풍경에 홀딱 반해서 제주 여행에서 우도는 꼭 들르는 코스였다. 이곳에 집을 짓고 멋진 풍경을 정원으로 들여놓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한없이 아름답던 풍경은 사진 속에만 존재하게 됐다. 그 자리에 리조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경치 좋은 곳은 종교 시설이나 리조트가 다 차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럼에도 아껴두고 싶은 풍경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는다. 이젠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올레 1-1코스 5구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풍경이 아릿하게 가슴속을 파고든다.

▲우도봉 데크길 ⓒ전윤선
▲우도봉 데크길 ⓒ전윤선

리조트 뒷길도 우도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우도봉 경치는 여전히 찬란하다. 우도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데크를 깔아 휠체어 탄 사람도 우도봉 근처까지 오를 수 있다. 데크길 끝에 계단 4개가 길을 막아서지만 그렇다고 우도봉까지 못 가는 건 아니다. 데크길을 내려가 잔디밭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물론 말똥과 소똥, 흙길 가야 하니 흙 밟을 각오는 해야 한다. 우도봉 꼭대기는 영화 ‘화엄경’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1993년 고운이 쓴 소설 화엄경을 장선우 감독이 연출했다. 주인공인 13세 소년 선재가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슬프고도 눈부신 만남이 이어진다. 길에 버려진 갓난아기 선재를 전과자 문수가 데려와 함께 산다. 양육할 아기가 생겼으니 문수는 새 삶을 살며 정성껏 선재를 돌본다. 십여 년 후 문수는 사고로 죽고 선재는 어린 소년이 됐다. 자신을 돌보던 문수가 죽자 소년 선재는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선다.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중 스님 법운도 만나고 시각장애 소녀도 만난다. 선재에게 여행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배우고 체험하게 한다. 우도봉도 영화에 등장하면서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다. 그러고 보면 순례길을 나서는 종교인이 많다. 불교는 만행으로, 천주교는 피정길을 따라 걸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고난을 견디며 자신을 다듬는다. 어디 종교인뿐이랴. 유목의 유전자를 장착한 인간은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고 동경은 여행이라는 행위로 이어져 문화가 만나 문명이 발전하고 길을 잇게 한다.

▲등대 전시관 주변 ⓒ전윤선
▲등대 전시관 주변 ⓒ전윤선

우도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감탄사만 터져 나온다. 맑은 날은 멀리 추자도도 보이고 성산일출봉과 지미봉까지 주변 풍경이 발아래서 꿈틀댄다. 우도봉을 내려와 등대 전시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등대 전시관 입구에는 활짝 핀 수국이 반긴다. 등대 전시관은 숲속의 자연과 어우러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전시관은 홍보관과 항로표지 체험관, 휴게소가 있다. 홍보관은 우도 및 향로표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돼 아름다운 등대 16경 등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다. 아쉽게도 내부 수리 중이어서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왠지 낭만에 빠져들게 한다.

▲검멀레 주변 포토 샷 ⓒ전윤선
▲검멀레 주변 포토 샷 ⓒ전윤선

우도봉을 나와 검멀레에 갔다. 검멀레는 우도봉 남쪽 아래쪽에 있다. 검멀레는 검은 모래라는 뜻으로 화산암이 풍화되어 생긴 검은 모래사장이다. 흑사장 끝 절벽 아래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이 숨어있다. 동굴 내부는 매년 가을 썰물 때 작은 음악회를 열 정도로 넓다고 한다. 보트를 타고 동굴 주변을 둘러볼 수 있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 접근성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휠체어 탄 사람도 보트도 타고 잠수정도 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실망은 잠시 넣어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검멀레 앞에는 해녀들이 갓 잡아온 해산물을 판매한다. 문어, 전복, 소라, 멍게, 해삼까지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더 심쿵한 건 빈 소라 껍질에 우도 땅콩 막걸리를 따라 마시는 것이다. 소라 껍질이 막걸리 잔으로 이렇게 어울리다니 너무 근사하다. 낭만이 철철 넘친다. 이러니 우도에 갈 이유가 자꾸 생겨 계속 찾게 된다.

여행도 궁합이 있다. 우도가 나와 궁합이 딱 맞는 곳이다. 우도에 갈 때마다 향기가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풍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게 다가온다. 물리적 접근성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그래서 우도가 좋다. 늘 새로운 우도에서 그동안 저장된 오래된 기억을 소환해본다.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우도 풍경에 포근하게 다시 안겨본다.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하우목동항, 천진항에서 내려 해안누리길 → 지석묘→ 나쁜정자?→ 돌칸이 → 우도봉 →검멀레
  • 접근 가능한 화장실: 하우목동항, 산호해변, 천진항
  • 접근가능한 식당: 산호해변 다수

[더인디고 THE INDIGO]

▶관련 기사
[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휠체어 타고 우도 한 바퀴①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승인
알림
662c8f758f4f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