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바꾸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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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고 받는 모습 ⓒunsplash
▲돈을 주고 받는 모습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새로 나온 옷이나 신발을 착용하고 학교에 가면 자기 것과 바꾸자는 거래를 걸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스스로 가진 물건들을 쇼호스트라도 된 듯 과장하여 자랑하며 이번 교환은 분명히 본인이 손해 보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밀곤 했다. 나름 그럴듯한 말재주에도 내가 그 거래를 수락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손해 보는 교환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딱하게 보였다면 색다른 나눔의 실천을 계획하는 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가진 물건이나 내게 입혀진 옷은 너무도 훌륭했다.

확인차 내가 가진 백 원짜리와 그 녀석이 가진 500원짜리를 바꾸자고 했을 때 손사래를 치며 도망쳤던 걸 보면 그 녀석의 교환 의지 발동은 나의 물건이 본인의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이 사람이 눈만 보였다면 나보다 나았을 텐데!’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은 보이지 않는 나보다는 시력 있는 나였을 때 내 가치가 높아진다는 분명한 믿음이고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부족한 존재라는 견해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이가 나에게 삶을 바꾸자는 제안했을 때 난 그의 의견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승낙해야 맞다. 그런데 난 어떤 이와도 내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와도,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누군가와도, 불세출로 잘생긴 배우라도,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큼의 천재와도 바꿀 마음이 없다. 하물며 눈 하나 조건으로 내밀고 누군가 내게 거래를 걸어온다면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난 그 거래를 거절할 것이다. 내 삶이라는 게 재산이나 지식 혹은 눈 하나 정도로 단순하게 그 가치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살아 온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이 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도 내가 가진 마음들도 나를 구성하는 특별한 요소들이다. 그 모든 것들은 나이기에 존재하고 온전한 나로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들을 다 포기하고 시력 하나의 조건으로 내가 다른 이의 삶을 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생각 속 나는 다른 이에 비해 부족하거나 열등한 존재는 아니다. 교환할 수 있는 상대의 것이 내가 가진 것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면 고민의 여지 없이 난 수락을 선택했겠지만 눈 보이지 않는 조건 하나로 난 내 삶을 다른 이와 바꾸고 싶지 않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주신 새 운동화처럼 난 내가 가진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

‘눈이 보인다면!’, ‘돈이 더 많아진다면!’, ‘더 힘이 세진다면!’ 때때로 막연한 상상을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온전히 나로 존재하면서 작은 부분의 발전된 변화를 꿈꾸는 것일 뿐이다. 난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와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난 괴력의 사나이는 아니지만 힘센 이의 삶과도 바뀌고 싶지 않다. 난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지만 시력 좋은 어떤 이의 삶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내 삶은 어떤 누구와도 쉽게 바꾸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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