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초미세공격

0
305
▲도로 옆 산책길에 나무 그림자 두 개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가 산책길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김소하 작가
▲도로 옆 산책길에 나무 그림자 두 개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가 산책길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대구시 북구 지역에는 주민들이 편리하고 쾌적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강북 도심 속 작은 나눔길’이 조성되어 있다. 집에서 가깝고 평탄하여 평소 자주 이용하는 길이다.

며칠 전 이 길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데 한 사람이 옆을 지나치며 혀를 끌끌 찼다. 동시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여기 사람 다니는 곳인데, 오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생각할수록 불쾌하여 뒤돌아보니 그 사람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애초에 나를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길을 차지한 물건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불쾌했다. 과거 어떤 행사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한 명’, ‘두 명’이 아니라 ‘한 대’, ‘두 대’로 명명했던 것이 기억났다. 휠체어를 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휠체어’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유전 질환으로 인해 양다리 보행이 어려운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여야만 한다.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네 바퀴로 구르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일상적인 행동과 언어로 모욕하는 것을 미세공격(微細攻擊, Micro-aggression)이라고 한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끔 하는 일상 속 질문도 여기에 포함된다.

미세공격이라는 표현은 1970년 하버드 대학 체스터 M. 피어스 교수가 흑인에 대한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적용 범위가 넓어져 현재에는 사회적 소수자에 쓰인다. ‘미세’는 자그맣고 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짧은 찰나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훼손하고 특정 시공간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장애인에게 ‘장애인 치고 똑똑하다…’, 여성 대표에게 ‘상사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에게 ‘게이 같지 않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어떤 인종이야?…’라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말을 통해 일어나는데 언뜻 차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함정이다.

미세공격은 사소하게 인식되기에 더 큰 문제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시정을 요구하면 ‘너무 예민하고 까칠하다.’, ‘뭘 그런 거로 그러니.’라는 말로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인다.

앞서서 나를 물건 취급했던 사람과 직접 만나 “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고, 그 말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입니다.”라고 항의한다면 십중팔구 분명 “그럴 의도는 없었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말하며 분명히 나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것이다.

커다란 먼지는 마스크로 막을 수 있지만 초미세먼지는 마스크도 소용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몸속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는데 초미세공격은 교묘하게 상대방을 분리하고 차별한다.

차별인 듯 차별 아닌 초미세공격을 멈추고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나부터 지난 시간을 돌아봐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승인
알림
663519774f1b4@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