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그 누구도 나를 체험할 권리는 없다

0
173
▲시커먼 밤, 텅빈 택시 승강장에 서 있는 수동휠체어를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다. ⓒ김소하 작가
▲시커먼 밤, 텅빈 택시 승강장에 서 있는 수동휠체어를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다가오는 2024년 4월 11일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적으로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6년이 되는 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장애인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한다. 해당 기관들은 장애인복지법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에 의한 인식개선교육 의무 대상이며, 진행 결과를 30일 이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에 따라 많은 곳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한다. 그런데 ‘장애’와 ‘장애인’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곳들이 많다.

‘장애 체험’이란 비장애인들이 안대를 착용하고 지팡이를 이용하여 시각장애를 경험하게 하거나 목발 혹은 휠체어를 타보도록 하여 지체 장애를 경험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적 불편을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이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아보자는 것이 취지이다. 이러한 ‘장애 체험’을 두고 “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측은 신체적 불편함만을 강조하여 장애인을 무능하고 불쌍한 존재로 낙인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도움이 된다는 측은 장애인의 불편한 점을 직접 체험하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체험만으로 장애인 개인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구조적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장애 체험을 반대한다.

대다수 사람은 정치인들의 서민 체험을 정치적 요식 행위라고 비판하지만, ‘장애 체험’에 대해서는 장애인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장애 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사람’이 아니라, ‘불편’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박탈된 존재들이 아니라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배려해 주어야 할 존재로 인식하도록 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 체험’이라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아니 그만 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휠체어를 타본다고 해서 장애인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억압을 설명해 내는 것이 가능할까? 택시를 2시간에서 3시간 가량 기다리고,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 위해 수백 미터를 돌아다녀야 하는 현실을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식당 셀프바 앞에서 어찌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무더운 여름 시원한 음료수를 사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야 하는 현실을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교육 효과도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았고, 타인을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간접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권리가 침해된 존재들의 삶을 교재로 삼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빈민 체험’, ‘노동 체험’은 봤지만, 사회적으로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존재들을 체험해 보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재벌 체험’ 같은 것 말이다. 섣부른 체험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행복의 기준점으로 삼게 할 수 있다.

40여 년을 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의 삶을 단 하루 ‘장애 체험’을 통해 이해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에게도 나를 체험할 권리는 없다. 남의 고통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승인
알림
6633c7602f81f@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