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48] ② 김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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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열린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동대문지회 김선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부모연대
▲8월 8일 열린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동대문지회 김선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저는 웃음이 매력적이고 양보를 잘하는 아들과 국대 축구선수가 꿈인 딸을 키우는, 초등 남매의 엄마입니다. 엄마 경력은 짧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제 이야기는 아직 영글지 못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낸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장애운동, 부모운동을 해오신 선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초6인 아이는 지난주 토요일에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서 주최하는 장애학생 생존수영에 참여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장애인에게 처음 열린 복지관 수영장에서였습니다. 정해진 시간 저희만 이용할 수 있어서 학생, 강사, 부모들 모두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프로그램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장애학생 수준에 맞아 만족스러웠고 학생들도 제법 잘 따라 하는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아침 저희 아이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장애인가족센터로 가서 지금 방학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애들 방학임에도 부담 없이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집에 혼자 있게 된 둘째는 편의점에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어 신났습니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 둘째는 비장애 형제를 위한 영화관 나들이에 다녀왔습니다. 몇 년째 비장애 형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즐거운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발달장애인 복지를 위해 지금껏 열심히 투쟁해오신 선배님들의 노고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무임승차자가 되지 싶지는 않아서 부모연대 회원이 됐는데, 활동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핑계겠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힘이 들었습니다. 당장 제 아이의 도전적 행동 지원 방법과 한글 깨치기, 좋아하는 활동 찾기 등이 더 시급했습니다. 등교 거부가 심한 아이에게 중학교는 특수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인원이 차 있는 상태라 입학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습관처럼 한숨을 쉽니다.

복잡한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다 문득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과 제도가 내 아이와 그 속도를 같이 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에 다다랐습니다. 뭔가 희망이 보이게 개선되는 듯하다가 정체되고 어느 때는 퇴행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 꼭 제 아이 같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오는데, 한숨만 쉬고 살 수는 없으니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좋아진 점이 있다고 위로받습니다. 그 위로의 바탕에는 바로 거리에서의 뜨거운 함성, 잘려 나간 머리카락, 목숨을 건 단식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배님의 땀과 눈물, 노고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딸이 언젠가 같은 팀 친구들과 얘기하다 ‘우리 오빠는 발달장애인이야’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발을 가리키며 ‘발’, 하늘을 가리키며 ‘달’ ‘장애인?’ 하면서 다같이 웃었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어린이들에게 ‘발달장애’는 웃음 코드로 사용되고 그 의미는 휘발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딸 역시 그 단어의 무게를 저와는 다르게 느끼므로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도 그렇게 반응했으리라 추측합니다. 누군가는 저를 나무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애’가, ‘발달장애’라는 제 가슴 속 돌덩이가 그저 별거 아닌 것처럼 다 같이 웃어넘길 수도 있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되는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2023년 8월 8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48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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