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51] ① 설지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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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열린 제51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성동지회 설지희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9월 5일 열린 제51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성동지회 설지희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안녕하세요. 저는 발달장애가 있는 10살 아들과 올 2월에 태어난 둘째를 키우는 엄마 설지희 입니다. 이 자리에 서는 순간까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많은 선배님의 노고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제가 여기 서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근데 둘째 딸아이를 낳고 한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올 2월에 둘째 딸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조금 늦게 찾아온 아이를 돌보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갓난아기가 주는, 자식이 주는 행복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오늘 태어난 지 193일 되는 날입니다. 이제야 허리에 힘 좀 받칠 줄 알아가는 아직 어리디어린 아기입니다. 제 딸이 100일 무렵 바람도 쐬며 낮잠도 재울 겸 아파트 앞을 천천히 돌고 있는데 정자에 동네 아주머니 5분이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저희 딸을 보시고는 대부분 아이를 보시면 다들 하시는 이쁘다, 귀엽다, 요즘 아기 보기 힘들다, 딸이라 좋겠다 등등 가벼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웃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애 엄마, 얼마나 좋아 그래~ 딸도 생기고 그 딸이 이렇게 예쁘니 말이야. 동생 생겼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안심했나 몰라. 아가~ 네가 있어서 엄마, 아빠가 한시름 놓겠다. 잘했어. 애엄마~ 형제가 있어야지 그래야 오빠를 책임져주지. 나중에 아들 혼자 두고 맘이나 편하겠어. 아가~ 오빠 잘 부탁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데 맥이 풀렸습니다. 저는 둘째를 낳은 건, 제가 좋자고, 제가 행복하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첫째를 위해 낳은 아이가 아닙니다. 그런 둘째가 이미 첫째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부여받은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부모가 부재중 일시를 대비해 장애 형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있는 비장애 형제. 그게 맞는 건가요? 다른 형제자매들도 서로를 책임지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나요? 왜 우리 아들의 삶을 우리 딸이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이게 지금 정말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100일짜리 아기가 들어야 할 말이 맞는 건가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가족에게 돌리십니까?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갈 때, 사회에 일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갈 곳이 없어서 집에만 있지 않을 수 있도록, 대학교, 교육센터, 일자리, 지원주택, 취미 생활공간, 다양한 교육을 한 개인인 저희 둘째가 할 수 있는 일이냔 말입니다, 어떤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냔 말입니다. 사회가, 국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걸 외면한 채, 언제까지 장애인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버틸 생각입니까.

저는 제 아들과 딸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그저 다른 형제자매처럼 믿고 의지하고, 종종 안부 전화하고 이따금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고 수다 떨다가 헤어지는 그런 남매로 남기를 바랍니다.

제가 낳은 남매는 그런 사이로 남을 수 있게 정부가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부디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모른 척 외면하지 마시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수립해주시기를, 저희의 울부짖음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3년 9월 5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51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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