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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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익은 초록 레몬 ⓒ픽사베이
▲덜 익은 초록 레몬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귀여운 꼬마 남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두 살쯤 많아 보이는 오빠는 동생의 행동이 영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설명서를 좀 봐.”

동생 입장에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듯 보이긴 했지만 어린 꼬마 동생보다 몇 년이나 더 많은 세상 경험이 있는 오라버니에게 그 행동들이 만족스럽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내게도 네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내 나이가 오늘 만난 꼬마 녀석들과 비슷하던 때 우리 남매의 투덕거림도 그 녀석들과 아주 다르지 않았다. 쉬운 보드게임의 규칙을 아무리 설명해도 동생은 그것을 이해하려거나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것이 더 예쁜 모양인지에만 관심을 보이거나 아무 카드에나 크레파스를 칠해 놓는 동생은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방해꾼에 가까웠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공놀이나 배드민턴 같은 것을 같이 해 보려고 해도 공을 잡지 못하거나 셔틀콕을 맞추지 못했다. 너무 어린 꼬마에게 그 정도의 이해력과 운동능력은 일반적이었지만 비교 대상을 몇 살쯤 많은 자신으로 삼고 있는 오빠에게 동생은 늘 답답한 지적의 대상이 되었다.

“잘 좀 해봐! 넌 도대체 왜 이것도 못 하니?”

“나처럼 해보란 말이야!”

난 내 필요에 의해 동생의 목표를 강제로 정해두고 평가하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동생에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동생이 나와 같은 나이였다면 보드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이나 상대를 향해 공을 던지는 정도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겠지만, 그녀에겐 조금의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했다.

몇 년쯤 일찍 세상에 태어난 내게 필요했던 덕목은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과 이해심이었다. “어렵지? 나도 잘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하다 보면 너도 잘하게 될 거야!”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나보다 운동신경이 좋았던 동생이 훌쩍 자랐을 때 덜 부끄러웠을 것이다.

마흔을 넘어가면서 직장에서나 모임에서나 중간 정도의 위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후배들의 실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열다섯 살쯤이나 어린 후배들의 업무가 내 마음에 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서를 보아도 행동을 보아도 하고 싶은 말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지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그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시간은 나를 조금씩 진화하게 만든다. 성장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뒤따라오는 이들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일이다. 3 곱하기 3을 아는 아이가 3+3+3을 구하려는 어린 꼬마를 어리석게 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모습을 예쁘게 바라보는 어른은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3+3+3을 하는 동안 기다려 주는 것이거나 3 곱하기 3이라는 방법도 있다고 한 번쯤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잘하지 못하는 이들이 보인다. 주변에 부족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우쭐댐이나 상대에 대한 무시가 아니다.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나은 사람, 많이 성장한 사람의 덕목이다. 글자 몇 자 읽는다고 으스대는 꼬마가 되지 않으려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거만함부터 다스리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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