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⑥너가 할 수 없다고 해서, 난 하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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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맹학교에서의 시그마팀 단체사진. 시그마팀원과 정중앙에는 에이드리언 아만디와 그 우측에는 서지혜 팀원이 시그마를 상징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캘리포니아 맹학교에서의 시그마팀 단체사진. 시그마팀원과 정중앙에는 에이드리언 아만디와 그 우측에는 서지혜 팀원이 시그마를 상징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캘리포니아 맹학교 방문기

[시그마팀 / 서지혜]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기술발전팀은 지난 7월 31일부터 10박 12일간 ‘디지털 IT, 일상을 바꾸는 기술’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체스터에 연수를 다녀왔다. 기술발전팀은 시각, 청각, 지체, 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청년과 비장애인이지만 수어통역, 특수교육, 보조공학 등 관련 전공자 그리고 영어통역과 활동을 지원하는 총 11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었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만큼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상호작용하여 하나 되어 나가자는 의미를 담아 합을 나타내는 수학기호인 ‘Σ(시그마)’ 라는 팀명을 짓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국립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에 재학 중인 나는 대학에서 자연계열을 전공했다.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하다가 안질환으로 중도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선천적 장애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통계청 자료(2021년)에 의하면 후천적 질환이 35.1%, 사고 37.1%, 원인불명 15.8%를 포함한 88%가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다. 장애로 인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학교에 입학했고, 미국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지는지 직접 알아보고 싶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한 기관은 캘리포니아 맹학교(California School for the Blind, 이하 CSB)였다. 미국 내 맹학교 중에서도 상위 3위 안에 드는 교육기관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하여 세계적인 테크기업들과 연계, 시각장애학생 디지털 기술 교육 분야를 이끌고 있다. 이 학교의 특색 중 하나는 장애학생들에게 이루어지는 코딩 교육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 방문하여 교육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지속해서 애플과 교류하며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글자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굳이 코딩 교육까지 받아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IT 개발자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코딩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나만 해도 직접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지금, 이전과 같이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카톡을 하는 일상과, 네이버에서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는 편의를 위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스크린리더다.

스크린리더는 시각장애인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앱 등의 디지털 정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의 내용과 자신이 입력한 키보드 정보나 마우스 좌표 등을 음성으로 알려주어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에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인데 웹페이지를 직접 만들어보고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면 스크린리더 사용이 훨씬 수월해진다. 단순히 단축키를 외워 사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웹페이지 별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쉽다.

우리는 CSB에서 교사로서 직접 애플의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에이드리언 아만디(Adrian Amandi)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CSB는 한반도의 2배 크기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주 전역에 걸쳐 시각장애교육의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장애학생들을 비장애학생과 구분하지 않는 통합교육(Inclusion)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러나 본교에 재학 중인 학생뿐만 아니라 통학이나 기숙이 불가능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 캘리포니아주의 일반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 학생들, 시각장애 학생을 지도하는 교원까지 전반적인 대상을 아우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걷히는 막대한 지방교육세와 주 교육청으로부터 나오는 기금(매년 약 30만 달러의 예산, 한화로 약 4억원)을 투입해 교육을 위해 탐구가 필요한 모든 유형의 기술 장비(전자 및 보조공학기기) 구입 및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교육 및 기술지원, 보조공학기기 보급 및 대체 자료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학교의 모든 학생은 모두 본인의 전자기기(노트북, 컴퓨터, 태블릿 등)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직원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 iOS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든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물론 수업 시간에 바로 옆에서 대필해주는 보조 인력 등 학생들의 교육기회 제공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코딩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 기초적으로 컴퓨터 다루는 법, 키보드 사용법, 스크린리더 사용법에 대해 교육한다. (스크린리더란, 컴퓨터 화면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와 버튼, 이미지 등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부터 교사들은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학생 개개인에게 수준에 맞는 개별화 수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에이드리언은 학생들이 어디에서든 기술지원은 필요하며, 학생이 어떤 접근성 기술이 있어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크린리더 사용법을 배우고 나면 코딩언어를 배우면서 본인들이 접근가능한 웹페이지를 직접 만들어본다. 일반 웹페이지는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학교의 학생들은 스스로 접근 가능한 웹페이지를 만들어보면서 정보접근성, 웹 접근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간다.

홈페이지에 보면 학생들은 4가지 다른 코딩 언어(code jumper코드 점퍼, code quest코드 퀘스트, HTML, quorum쿼럼, python파이썬)에 대해 배우고 있다. 코딩언어를 배운 후에는 학생들과 함께 2023 National Coding Symposium (코딩 심포지엄)이라는 37개국에서 2,500명의 학생이 참가하는 큰 행사에 도전하고 있다. 코딩언어를 활용한 교육에 있어서 체험 위주의 코딩교육(로봇, 드론 움직이기 등)은 순간적인 흥미는 불러일으키지만, 지속적인 수업이 어렵다. 그래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수업방식을 고안했다. 직접 좋아하는 주제로 웹페이지를 만들어보는 방식의 수업이다. 학교는 이러한 과정들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정보화기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보화기술교육을 통해 디지털 접근성 기술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웹 접근성이 좋지 않은 사이트를 만났을 때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수정하면 좋을지 파악하여 요청할 수 있게 된다. CSB에서는 교육의 또 다른 목표로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맞닥뜨릴 불편함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자기 옹호(Self-advocacy)를 학생들이 배워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분쟁 해결’ 수업이 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 주제를 가지고 탁 트인 체육관에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자칫 분쟁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를 이 수업 시간을 통해 대화로 풀어나가는 연습을 하며 학생들은 사회성을 길러나갈 수 있다.

CSB뿐 아니라 이번 드림팀 연수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가 자기 옹호(self-advocacy)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특수교육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못 한다고 주저앉아 있게 하지 않는다. 동등한 삶의 기회를 갖기 위해 스스로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환경을 충분히 지원해주려는 부분이 한국과 미국 장애인식의 큰 차이점으로 느껴졌다.

▲맹학교의 상징인 치타가 지평선을 넘는 모습의 벽화 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맹학교의 상징인 치타가 지평선을 넘는 모습의 벽화 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캘리포니아 맹학교의 드넓은 캠퍼스 부지를 걷다 보면 짙은 파란색의 벽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내게는 벽면에 점자로 적힌 CSB 글자가 맹학교임을 알려준다. 햇살 속으로 치타가 뛰어 들어가고 ‘당신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는 건 당신뿐이다(YOU ARE THE ONE WHO CAN STRETCH YOUR OWN HORIZON)’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남들이 장애를 이유로 한계를 짓는다고 해서 그에 맞출 필요는 없다. 기고문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중증 시각장애인이 개발자로 IT회사에 입사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글자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코딩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몸으로 증명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과 CSB에서 들었던 벽화의 한쪽 귀퉁이의 ‘네가 할 수 없다고 해서 난 하고 싶어졌어(I want to, because you said I couldn’t)’ 라는 문구가 겹쳤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컴퓨터에 대한 접근이 코딩교육, 정보화 교육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시각장애 전문교사 전문환경과 맞춤형 편의지원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는 장애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남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 원동력을 얻었다는 게 크게 와닿은 하루였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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