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장애인고용지원의 예외가 되는 당사자단체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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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휠체어 위에 지팡이만 놓여 있다. ⓒUnsplash
▲빈 휠체어 위에 지팡이만 놓여 있다. ⓒUnsplash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장애당사자단체는 장애계에 없어선 안 될 집단이다. 동료지원에서부터 권익옹호, 때론 불법적인 투쟁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과 활동가가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권이 그만큼 향상될 수 있었다.

이들 당사자단체를 운영하는 주체는 역시 당사자일 것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IL센터)는 대부분 당사자만이 센터장을 맡을 수 있다. 임원이나 팀장 등의 중간관리자에 대해서는 센터마다 다르다. 그 역할이 어찌됐든 간에 당사자단체 운영의 핵심은 당사자성이고, 그것을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단체의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당사자단체 활동가들의 업무는 노동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노동을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규정하며,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다. 장애인고용법은 근로기준법의 정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어떤 행위가 노동으로 정의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행위에 대한 대가가 따를 것
2.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력을 할 것
3. 노력을 하는 대상이 사업 혹은 사업장일 것

당사자단체 활동가들은 대가를 받는가? 그렇다. 물론 ‘세바다’처럼 무급봉사나 적은 활동비를 받고 일시적으로 일하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은 유급으로 상근 활동가를 채용한다. 대형단체는 풀타임에 최저시급 이상을 지급하며, 4대 보험과 연말정산 등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당사자단체 활동은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력인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 대상이 사업 혹은 사업장인가? 당사자단체는 비영리단체 등록이 되어 있다면 비영리 사업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사자단체 활동은 노동(근로)임이 분명하고, 당사자단체 활동가 역시 노동자(근로자)가 맞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되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노동자이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당사자단체 임원이다. 당사자단체뿐만 아니라 영리와 비영리를 막론하고 대표나 이사 등의 임원진은 노동자(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주로 간주한다. 노동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당사자여도 임원은 노동력을 제공받기에 사업주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일반적으로는 타당한 논리이다.

노동자와 사업주에 관한 기존의 정의가 당사자단체에 적용되면 이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모순이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장애인 고용지원 혜택은 노동자(근로자)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동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만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사례를 보자.

장애인단체 임원 A 씨는 미등록 장애당사자이다. 그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해당 단체의 임원으로 선임되었고, 업무능력과 성과에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법정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이사로 재직하는 단체와 근로계약을 새로 맺으면서 생겼다. 그는 등기임원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인턴제와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그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이사직을 사임하였다.

당사자단체는 당사자가 당사자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단체이고, 그 운영 주체는 당사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장애인 노동자로서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는 단순한 직원으로만 남고, 운영자는 비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모순점이 생긴다. 두 번째 사례를 보자.

나는 중증정신장애인이자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의 대표이다. 하지만 세바다 대표는 법적인 직업이 아니고, 본업은 후견신탁연구센터 팀장이다. 후견신탁연구센터에 입사할 때,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신청했고 주 32시간 지원을 받게 되었다. 사업계획서를 수정할 때 계산 실수가 잦았고, 감정조절이 어려워 갑자기 우는 등의 행동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어려움은 세바다활동에서도 여전하지만, 근로지원인은 후견신탁연구센터 노동자로서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선임되었기 때문에 세바다의 일은 도울 수 없다. ‘세바다대표 자격으로 근로지원인을 신청할 수도 없다. 센터 일을 할 때는 근로지원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세바다업무는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당사자단체 대표는 노동자이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장애인노동자이되 장애인노동자가 아니다. 당사자단체 임원들에게는 당사자단체 임원을 포기하거나 장애인노동자로서 고용지원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기로가 주어진다. 그리고 생계가 열악한 대부분의 장애인 활동가는 당사자단체 임원을 포기한다.

혹자는 장애인단체에 왜 당사자 이사가 없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장애인 사업주와 임원에게 왜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느냐?“라고 바뀌어야 한다. 임원 혹은 고용지원 둘 중의 하나를 강제로 포기하게 해놓고, 당사자 이사가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사회는 얼마나 몰염치한 것인가? 당사자단체의 정의(justice)를 위해, 이 모순과 몰염치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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