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시청각장애가 있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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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설정 기능으로, 화면의 원하는 부분을 세 번 연속 터치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사진.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아침 6시가 되면 베개 속에 있는 시계가 요란하게 진동을 하며 잠을 깨운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잠결에 베개의 커버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울리고 있는 진동 시계의 버튼을 끈다. 하지만 5분이 지나면 또 진동을 하며 어서 일어나라고 아우성치는 녀석이다. 시계의 건전지를 빼버리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5분 단위로 끝없이 진동하며 내가 일어날 때까지 녀석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눈을 뜨고 시계의 건전지를 빼서 침대 밑에 넣어놓은 뒤 베개 두 개를 쌓은 뒤 침대에 기대 앉는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인터넷’ 버튼을 눌러 ‘오늘 날씨’를 검색한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아래로 내리면서 오날 날씨 관련 뉴스를 발견하면, 해당 뉴스를 검지손가락으로 터치한다.

사실 폰 화면에서 ‘인터넷’이라는 글자를 읽고 아이콘을 누른 게 아니라, 폰 화면 하단의 아이콘 중 ‘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터넷’이라는 걸 위치로 기억하고 터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씨’ 관련해서 ‘뉴스’라고 적힌 것도 실제 ‘뉴스’라는 글자를 읽은 게 아니라 그동안 매일 봐오던 ‘감’으로 이 부분이 뉴스 코너라는 걸 확신하고 터치한 것이다.

업로드된 기사의 제목부터 본문 내용은 손으로 화면을 세 번 터치하면 확대되는 스마트폰의 접근성 기능을 활용하여 읽는다. 보통 갤러리에서 사진을 확대하기 위해 두 번 연속 터치하면 사진이 커지는데, 스마트폰의 접근성 기능을 설정하면 사진뿐만 아니라 인터넷, 카카오톡 메시지 등 스마트폰 화면의 어느 위치든 확대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면 날씨에 맞게 그날 패션을 선택한다. 여기서 요즘은 특히 니트의 색깔 구분이 힘들다. 2년 동안 베이지색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입었던 니트가 사실은 핑크색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갈색과 초록색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튀지 않으면서도 단정하게 코디를 맞춰 입는다. 물론 내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건 눈으로도, 손으로도 시간 확인이 가능한 브래들리타임피스다.

취재 일정이 있는 날이면 활동지원사를 만나 나비콜을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나비콜 어플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여 배차를 위한 접수는 스스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비콜이 배차된 경우, 스마트폰에 나온 나비콜의 택시 번호는 세 번 연속 터치하여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 출발지로 오는 나비콜은 내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택시 가까이 가서 번호판에 얼굴을 들이대고 확인하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택시(나비콜)임에도 택시 번호를 확인해줄 누군가가 없으면 혼자 이용하기 쉽지 않다.

취재의 목적지가 스타벅스나 이디야 등 잘 알려진 브랜드의 카페인 경우에는 자주 봤던 간판이니까 내가 직접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작은 카페나 건물 안에 목적지가 있는 경우에는 혼자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인터뷰는 비교적 조용한 곳에서 진행하는 게 좋기 때문에 혼자 목적지를 못 찾는 일이 없도록 가급적이면 활동지원사가 동행하는 게 마음 편하다.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면 활동지원사 또는 속기사가 문자통역을 한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자료와 질문은 다이어리에 기록도 해 두고, 스마트폰에도 메모해 두었다. 하지만 인터뷰 중에는 절대 꺼내서 보지 않는다.

내가 쓴 글씨라도 다이어리에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야 하고 스마트폰은 세 번 연속 터치해서 글자를 크게 해서 봐야 하니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문자통역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노트북 화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보기가 조심스럽다. 취재원이 말하고 있는 걸 문자통역 받고 있으니까 노트북 화면을 봐야 되는데, 다른 쪽(다이어리나 스마트폰)을 보면 말하는 사람이 말하고 있는 걸 듣지 않고 딴짓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자통역은 취재원이 말하는 걸 ‘그대로’ 전달받기보다는 ‘분위기’도 알고 싶다. 취재원이 말하는 걸 기계적으로 타이핑치며 전달하기보다는 어떤 말투로 말하고 있는지, 지금 분위기가 어떠한지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기사를 쓸 때 인터뷰의 흐름이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기사를 쓰는 건 참 즐거운 작업이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취재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 누군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일을 하는 기자라는 직업은 참 좋은 것 같다고 기사를 쓸 때마다 항상 느낀다.

기사를 스타벅스에서 쓰는 걸 좋아하는데, 단언컨대 내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모두 날 알 것이다. 혹시 내게 해야 하는 말이 있을 때 직원들은 항상 종이나 본인의 스마트폰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게 보여준다. 또 주문이 많아서 픽업대에 주인을 기다리는 음료가 아무리 많아도 내 음료를 찾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나를 알기 때문에 내가 아메리카노를 받으러 픽업대로 가면 직원이 알아서 내 닉네임이 적힌 컵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작업하는 모습, 활동지원사와 함께 왔을 때 손바닥 필담으로 대화하는 걸 보면서 내게 장애가 있다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청각장애가 있는 줄만 아는지, 내게 할 말이 있어서 무언가를 적은 종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면 거기 글자는 굉장히 작아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그럴 때는 내 스마트폰의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켜서 직원에게 보여주면 된다. 그럼 직원이 말하는 게 스마트폰 화면에 큰 글씨로 나오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금방 알 수 있다.

스타벅스에서 기사를 다 쓰지 못했을 때는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숏다리를 한 마리 산다. 집에서 노트북을 펼쳐서 기사를 쓸 때 숏다리의 다리 하나를 물고 씹노라면 참 맛있다. 지금 내 입 속에서 씹혀지고 있는 숏다리 하나가 완전히 내 뱃속으로 넘어가기까지 기사의 한 문장을 완성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스스로와의 내기를 하며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시청각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기자로 활동하냐고. 발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정보가 생명인 직업이 기자인데, 잘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기자를 하냐는 거다. 그러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보다는 그냥 ‘그래도’ 기자라는 직업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여타 기자들과 다르게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뿐이라고.

아침에 일어나는 방법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방법이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듯이, 시청각장애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서 아침에 일어나고 스마트폰을 본다.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누가 보고 들으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겐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한 영역이다. 그게 기자가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더 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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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07@daum.net'
나홀로
3 months ago

남들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응원합니다

jjangnul@naver.com'
장누리
3 months ago

기자님 뵈었을때 제 손목에 있는 브래들리타임피스를 자랑할껄 그랬네요~다음에는 음성인식기능 저도 사용할래요! 손담보다 긴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