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파란색이 아니고 보라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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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스프리의 간판 색깔과 글자 크기, 위치 등 디자인이 기존과 완전히 달라지는 바람에 매장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었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단골로 이용하는 이니스프리에서 생일이라고 40% 할인 쿠폰이 발급되었다. 마침 사용하던 스킨이랑 로션이며 수분크림까지 다 떨어져서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쿠폰의 유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사용하기 위해 날을 잡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니스프리 매장은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야 한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열심히 역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손에 쥐고 있는 폰이 진동을 한다.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다. 그 자리에 멈춰서 내용을 확인하니, 발신자는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의 원장님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방금 날 봤단다. 빨간 옷 입은 걸 봤다니까 내가 맞는데,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 시각장애가 있어서 잘 안 보이는 상황에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운전을 위해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군지 알아본다는 게 신기한 것이다. 그것도 운전 중이면 멈추지 않으니까 어쩌면 찰나의 순간인데, 그 순간에 나를 알아봤다는 게 실로 놀랍다. 나도 분명히 예전엔 비장애인이었으면서도 너무 오래 전이라 잘 보였을 때의 기억이 이젠 너무 흐릿하다. 잘 보인다는 게 어디까지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탔다. 한 정거장만 가기 때문에 금방 내렸다. 그전까지 이니스프리는 늘 활동지원사와 동행했기 때문에 혼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몇 번 가 봐서 매장의 위치도 알고, 내가 필요로 하는 스킨과 로션, 수분크림이 있는 위치도 알고 있다. 직원과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해 소통하면 되니까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하철역 축구를 나오니 이니스프리 ‘간판’이 안 보였다. 내 기억으로 분명히 출구에서 몇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매장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Innisfree’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질 않았다. 검색을 통해 오늘 영업 중이라는 걸 확인까지 하고 왔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구에서 조금 더 멀리까지 걸어가 보았지만, 역시 간판은 나오지 않았다.

검색했을 땐 ‘OO역 2번 출구에서 31m’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난 출구를 잘못 확인한 건가 싶어 다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분명히 출구는 맞았다. 그래서 다시 검색을 해서 이니스프리 매장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던 중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니스프리 매장의 간판이 바뀐 것이다. 영어 알파벳의 크기와 색깔은 물론 간판의 배경 색깔도 바뀌었다. 또 내가 기억하는 간판은 이니스프리 영어 알파벳이 간판의 중앙에 큼직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바뀐 간판에는 왼쪽에 치우쳐서 작게 디자인된, 그러니까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어서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매장으로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 중 날 알아봤다는 미용실 원장님의 시력이 괜히 부러웠다. 활동지원사와 갔을 땐 간판보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더 가늠해서 갔고, 이니스프리는 예전부터 이용해 왔기 때문에 간판만큼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는 무언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혼자니까 출구에서 이 정도 거리의 위치라면 이니스프리라는 짐작이 되더라도, 적어도 간판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간판의 스타일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고 헤매는 상황까지 갔던 것이다.

집에 와서 지인에게 헤맸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니스프리는 지금 말고 바뀌기 전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고. 스킨이나 로션, 수분크림의 케이스가 파란색일 때가 더 좋다고. 내 말에 지인이 한 마디 해줬는데, 그 말에 난 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전에 케이스는 파란색 아니고 보라색인데….”

솔직히 뒤통수 맞은 기분을 넘어 충격이 컸다. 난 이니스프리의 간판과 케이스가 바뀌기 전까지 무려 10년 넘게 애용한 단골이다. 회원등급이 vvip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10년 넘게 내가 매일 아침에 샤워 후 바르는 스킨과 로션, 그리고 수분크림의 케이스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라색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봐 오던 어떤 특정한 것이 익숙하게 기억되는 바람에 제대로, 집중해서 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아보지 못한다. 파란색과 보라색처럼 뭐랄까, ‘블루(blue)’ 계열의 색을 정확하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내가 볼 수 있는 게 여기까지인 것이다.

오늘 기자노트에는 이렇게 뒤통수를 두 대나 맞은 것 같은 경험을 했다는 내용과 함께 내가 얼마나 안 보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적어야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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