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오해, 그리고 시청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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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뒷모습)이 통역사와 함께 촉수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밀알복지재단 홍보실
  • 의사소통 방법이 다양할수록 오해의 소지도 커
  • 시청각장애인은 장애 정도에 따라 다양한 의사소통 사용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사람들은 종종 소통 과정에서 오해를 경험한다. 글이나 말 중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하더라도 자신이 의도하고자 했던,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오해를 경험할 수 있는데,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이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의사소통이 존재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가 시청각장애인이다.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과 청각 기능이 모두 손상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 장애의 손상 정도에 따라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르다. 또한 어느 쪽의 손상이 먼저 이루어졌느냐에 따라서 같은 시청각장애인이지만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달라진다.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청각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은 대개 구어나 수어가 주 의사소통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시각장애를 추가로 가지게 되면 상대방이 구사하는 구어의 입모양과 수어의 손모양을 정확하게 또는 아예 알아보기 힘들다.

이런 경우 잔존시력이 남아 있는 시청각장애인은 그가 볼 수 있는 만큼 가까이에서 수어를 하며 의사소통할 수 있는데, 이를 ‘근접수어’라고 한다. 시력을 모두 상실하여 전혀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수어를 구사하는 손을 접촉하여 촉각으로 무슨 수어인지 이해하며 의사소통할 수 있다. 이를 ‘촉수어’라고 한다.

어느 시청각장애인 중에는 말하는 사람의 입술에 손을 얹고 그 입모양을 촉각으로 느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경우도 있고, 말하는 사람의 목에 손을 얹고 거기서 나는 발성을 촉각으로 느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시각장애를 먼저 가지고 살아오다가 나중에 청각장애도 가지게 된 경우에는 점자나 글자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 경우 손바닥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고, 점자의 여섯 개 점을 양손 검지, 중지, 약지 여섯 개 손가락에 대입하여 점자형 키보드로 간주하듯이 타이핑치며 대화하는 ‘점화’라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시청각장애라는 공통분모가 있더라도 저마다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시청각장애인끼리 만나도 서로 의사소통 방법이 다르고, 서로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을 모르면 통역을 거쳐야 대화가 가능하다. 즉 시청각장애인 A 씨는 촉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시청각장애인 B 씨는 점화나 필담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A 씨는 점자를 모르기에 점화를 할 수 없고, B 씨는 수어를 배우지 않았기에 촉수어를 하지 못한다. 그럼 A 씨의 의사는 B 씨 옆에서 통역사가 점화나 필담으로 통역하면 되고, 반대로 B 씨의 의사는 촉수어통역사가 A 씨에게 촉수어로 전달한다. 즉 시청각장애인 한 명당 통역을 위한 한 명의 지원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Deaf-Blind Time

시청각장애인 한 명당 한 명의 지원인력이 필요한데, 지원인력 역시 모든 상황적 요소를 시청각장애인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다. 또 전달받은 시청각장애인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 재차 전달하는 과정 등을 반복하기도 하고, 시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 방법 자체에 아직 미숙한 경우 천천히 통역하다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은 천천히 진행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청각장애인이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법에 맞게 자리 세팅도 중요하다. 촉수어로 의사소통하는 경우에는 시청각장애인과 통역사가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구조의 의자가 배치되어야 한다. 점화로 의사소통하는 시청각장애인은 통역사와 나란히 앉는 자리 배치가 좋을 수 있고,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한 점자 또는 컴퓨터 화면의 글 글자로 문자통역을 받는 경우에는 문자통역하는 통역사의 자리 배치도 중요해진다.

이렇게 자리 배치부터 통역을 통해 어떤 모임에서든 시청각장애인이 참여하는 과정은 느리고, 천천히 가야 한다. 이를 ‘Deaf-Blind Time’라고 한다.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기관에 손상이 있어서 달팽이처럼 모든 과정에 느리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싱가포르 국적의 시청각장애인 ‘프란시스’를 만난 적이 있다. 그와 의사소통을 나눈 과정이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자는 손바닥 필담과 큰 글자 문자통역, 프란시스는 국제촉수어로 각각 의사소통을 해서 중간에 통역이 이뤄져야만 대화가 가능했다.

먼저 기자가 프란시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국말로 하면, 그 말을 통역사 A가 영어로 통역한다. 그럼 통역사 B가 A의 영어를 듣고 프란시스에게 국제촉수어로 통역한다. 반대로 프란시스가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국제수어로 하면, 통역사 B가 그걸 보고 영어로 통역한다. 그럼 A가 B의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고, 통역사 C가 기자에게 큰 글자로 문자통역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데에 이렇게 몇 번의 통역을 거쳐야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이라는 동질감 하나로 국경을 넘은 우정과 교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것 같다. 운동을 좋아하는 프란시스는 언젠가 기자와 함께 마라톤에 나가자고 하며 당시 기자와 그의 손목을 함께 고정하고 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같은 제스처를 취했을 때, 프란시스는 기자를 기억할까.

다른 의사소통 방법으로 인한 오해

하지만 같은 시청각장애인이라도 이렇게 의사소통 방법이 다양한 만큼 오해의 소지도 적지 않다.

시청각장애인 여럿이 모인 커뮤니티의 경우, 주로 ‘활자’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근접수어나 촉수어가 주된 의사소통 방법인 시청각장애인은 해당 커뮤니티에서 본인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 반면 글로 표현이 가능한 시청각장애인은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시청각장애인은 간단하게만 의사를 표현하거나, 활동 자체가 뜸해진다.

이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시청각장애인과 수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시청각장애인 사이에 의사의 전달과 통역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상세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수어는 언어 특성상 간단하고 핵심적인 내용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거나 오해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부분을 감안한다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의사소통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의사를 표현하고 싶어하는지 그에 맞는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또 원활한 의사소통에 대한 통역 지원도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시청각장애인 사이의 오해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원활한 시청각장애인들의 교류가 가능해질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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