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여기,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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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웅덩이에 사람 한 명이 빠져 있다. ⓒ김소하 작가
▲깊은 웅덩이에 사람 한 명이 빠져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2024년 새해 새벽 5시,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저려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려보니 의자 팔걸이 사이에 다리가 끼워져 있었다. 자는 도중 몸을 뒤척이다 이리된 것 같았다. 통증이 심해진 다리를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덫에 걸려 버둥거리는 야생 동물이 따로 없었다.

비장애인처럼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장애로 인해 스스로 체위 변경이 어려운 나에게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응급 상황 시 화재·가스 감지 센서·단말기 등을 통해 자동으로 소방서에 신고되는 ‘장애인 응급안전 알림서비스’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단말기가 거실에 있어 작동할 수가 없었다. 4시간 후에 활동지원사가 올 예정이었지만 이 상태로 오래 있으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핸드폰을 찾았다.

방이 너무 어두워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손바닥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불을 더듬다 보니 선이 느껴졌다. 선을 살짝 당겨보니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핸드폰 무게로 인해 선이 분리되면 낭패이기에 조심스레 당겼다.

핸드폰을 손에 잡자마자 급히 활동지원사께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이른 새벽인지라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고민하다가 응급안전 알림서비스도 어차피 119로 연결되니 바로 구조요청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상황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당장 위급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위험할 수 있으니 빨리 와달라, 살려달라”고 사정하며,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상담 소방관은 끼인 의자의 종류와 소재가 무엇인지, 절단기가 필요한지, 출동할 곳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나하나 답변한 뒤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다.

상담 소방관은 ‘호흡을 깊고 천천히 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면 곧 갈 것’이라고 나를 진정시켰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차분하게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파악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신고자까지 챙기는 것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출동 소방관이 곧 도착한다는 목소리를 뒤로 통화를 마쳤다. 이후 핸드폰으로 출동 소방관의 실시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링크가 도착했다. 링크를 눌러보니 가까운 소방서에서 출발한 차량의 이미지가 천천히 집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3명의 소방관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이민호 씨”, “어디 계신가요?”라며 나를 찾았다. 큰 목소리로 방의 위치를 알렸고 신속히 들어와 다리를 빼주었다. ‘살았다’라는 안도감에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더 도와드릴 것이 없는지 물으며, 신고자가 맡는지 확인했다.

모든 조치가 완료된 후 소방관들이 집을 나서기 전 ‘따로 도움 청할 곳은 있는지?’, ‘아파트 관리실에는 연락을 취해 봤는지?’ 질문했다. ‘그럴 경황도 아니었고 응급안전알리미도 어차피 119로 연결되기에 바로 신고했다’라고 말하며, 늦은 시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소방관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지금 언쟁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기에 그냥 넘겼다.

소방관들이 돌아간 뒤에도 통증이 남아 있어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어두운 천장을 보다가 2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119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당시 상황실에서는 ‘그런 사소한 일로 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크게 화를 내며 그럴 거면 ‘응급안전알리미 단말기 떼가시라’라고 항의했다. 나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당신들이 책임지라며 출동을 강제한 적이 있었다.

당시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일선 소방관들이 ‘장애인 응급안전 알림서비스’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2024년 서비스 대상이 양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서비스의 질적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대로 설명이 되었다면, ‘관리실에 연락을 취해보지 않았느냐?’라고 신고자에게 반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았을 때 응급안전알림서비스가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이유로 일상·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에게 1:1 인적 서비스를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를 24시간 지원하지 않기 위한 핑곗거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지원하는 것보다 예산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을 중심에 놓고 예산과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기에 정확한 추론일 것이다.

일례로 범죄 예방을 위한 CCTV는 관찰만 가능하기에 범죄를 발견하더라도 즉각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범죄 예방 효과를 떠나 모든 상황이 끝난 뒤 증거자료로만 쓰일 가능성도 있다. CCTV와 함께 현장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응급안전알림서비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단말기를 작동할 수 없다면, 작동하는 동안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할 것이다. 응급안전알림서비스의 확대보다 현장에서 바로 지원이 가능한 인적 서비스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24시간보다 응급안전알림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안전한 삶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시스템으로 해결하지 않고 개인의 탓으로 전가하려는 것이 아닐까? CCTV와 기계에는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지 않고 눈과 귀만 달려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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