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성공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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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노트에 집과 국밥 그림이 있는데, 국밥 그림 위에 X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위에 도전!이라고 쓰여 있다. ⓒ김소하 작가
▲스프링 노트에 집과 국밥 그림이 있는데, 국밥 그림 위에 X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위에 도전!이라고 쓰여 있다. ⓒ김소하 작가
  • UN장애인권리협약에 추가될 권리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날씨가 따뜻해졌다고들 하지만, 높은 일교차로 인해 아침저녁 공기가 차다. 이 공기는 ‘국밥’을 좋아하는 나에게 희소식이다.

뜨거운 여름은 땀을 뺀다는 이유로 서늘한 가을은 식욕이 좋아졌다며 국밥을 즐기는 나에게 “또 국밥이냐?”며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날이 추워서 국밥을 먹는다고 적당히 핑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추위와 배고픔을 핑계 삼아 국밥집 문을 열었다. 따뜻한 온기와 복잡한 냄새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식기들이 부딪치고 수레가 움직이는 소리 위로 “어서 오세요”라는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자리를 잡자, 물과 밑반찬이 나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메뉴판을 열었다. 선짓국, 소고기 해장국, 뼈다귀해장국 같은 국밥이 주를 이루었다. 간판에 국밥 전문점이라고 크게 적어놓은 것이 이해되었다. 다시 메뉴판을 보니 평소 접하지 못한 게 눈에 띄었다. 바로 ‘수구레국밥’이라는 것이었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경상도권에서 즐겨 먹는 향토 음식으로 수구레는 지방이 적고 젤라틴과 콜라겐 성분이 많아 관절에 좋다. 비싼 소고기를 먹기 힘들었기에 소가죽에 붙어있는 수구레 부위로 탕을 끓여 먹은 것이 시초다. 선짓국하고 비슷한 맛이 나는데 술 먹은 다음 날 해장국으로 많이 먹는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서민 음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저지방의 살이 찌지 않는 건강 음식으로 알려져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다른 국밥보다 가격은 비쌌지만, 호기심이 생겨 바로 주문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검은색 뚝배기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식탁에 올라왔다. 하얀 김이 안경을 뒤덮어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제대로 먹기 위해 안경을 벗고, 뚝배기 속에 숟가락을 넣자, 거품과 김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내용물이 드러났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뜨거운 건더기를 식혀 먹기 위해 앞접시에 조금 옮겨 담았다. 그러는 사이 국물의 뜨거움도 한 풀 가라앉았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니 속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얼큰함을 좋아하는 나에게 다소 밋밋했다. 후추와 새우젓을 넣어보았지만,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았다. 국물을 뒤로하고 앞접시에 옮겨 두었던 수구레를 입에 넣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질겅거리며 입안을 굴러다녔다. 오래 씹어 딱딱해진 풍선껌 같았다.

한 마디로 오늘은 ‘실패’였다. 절반 이상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남겨진 것을 보며 ‘평소 먹던 것을 먹을걸….’이라며 후회가 밀려왔다. 아쉬웠지만 다음 용무가 있어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뽑아 식당을 나섰다. 식당 주차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실패’가 ‘실패’인지에 대해 따져보니 성공한 것도 있었다.

앞으로 수구레국밥을 사 먹지 말자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수구레국밥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 2개를 얻었기에 성공한 셈이었다. 사 먹은 것을 후회하는 실패 1개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기에 ‘성공한 실패’인데 ‘경험’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도 지역사회로 자립한다고 선언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냥 집에 있으면 편한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그때 반대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지역에서의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것인지 모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실패’ 또한 장애인에게 ‘권리’인 셈이다. 아마 나와 같은 장애인 동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위험해, 하지 마.’일 것이다. 장애인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실패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 경험하고 자신의 선호를 찾아가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은 스스로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니 ‘보호해 주자’라는 오래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의 표출이 ‘장애인 거주시설’이지 않을까?

장애인의 실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실패를 경험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자기 결정권과 선택권을 스스로 학습하고 누릴 수 없다. 그렇기에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선택권은 실패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UN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실패할 권리’가 명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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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zaio@naver.com'
JSH
1 month ago

성공의 어머니,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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