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내게 장애가 있어도 우린 진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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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로프로 만든 우정 표시 ⓒ픽사베이
▲단단한 로프로 만든 우정(하트) 표시 ⓒ픽사베이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통합교육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렸다. 장애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나를 아픈 존재로 여겨서, 근육병의 고통이나 불편을 내색하지 않고, 비장애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고 애썼다.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춰줘야 함께 어울리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나랑 놀아준 비장애 친구들이 감수한 것들도 적지 않았을 테다. 만나려면 직접 찾아주는 수고가 필요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정적인 놀이만 할 수 있는 답답함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친구와 사귀고 어울리는 일이 내겐 혼자 풀 수 없는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 마음을 아셔서 엄마는 아이들을 초대하여 환영하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도와주셨다. 집 형편이 풍족하지 않아도, 장애로 맘껏 돌아다닐 수 없는 아들에게 장난감과 전집을 사주셨고, 반려견을 키우면서 마음의 안정도 챙기셨다. 시설로 보내라거나 학교에 가면 뭔 소용이냐는 주변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지지하고 사랑해 주셨다.

우정을 나눈 아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내 삶에 선한 영향력과 전환점을 가져다준 세 친구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먼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함께 나온 준민이가 있다.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친구로, 좋은 사람이 세상 어디든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었다. 걸었던 시절부터 추억을 함께 쌓아온 몇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고 레고로 놀기를 좋아했던 우리는 그저 서로를 아끼고 곁을 내어주면서 즐거웠다. 내 아픈 몸을 걱정해 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건물과 도로 같은 시설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개선되길 희망했다. 그 어린 나이부터 장애를 사회구조적 차별로 이해해 준 준민이가 지금 생각해도 참 든든하고 고맙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쓰러지셨다. 엄마는 고심 끝에 내게 휴학하고, 아빠의 치료와 회복에 전념한 후에 공부를 재개하자고 타이르셨다. 그렇게 두 분이 학교에 찾아가 배정된 학급을 들여다보는데,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주환이가 환하게 인사하는 게 아닌가? 그 운명 같은 만남으로 부모님은 단번에 결정을 바꾸셨다.

힘드셔도 중단하지 않고 아픈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하셨는데, 그때 주환이를 같은 반에서 재회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휴학했을 것이고, 어쩌면 고등학교까지 입학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서너 명만 이곳에 입학했으니, 활기찬 주환이가 나를 이끌어서, 더 공부하고 활동하며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준 특별한 인연이라 믿는다.

고등학교에 가선 중학교 동창 경민이가 짝꿍이 되었다. 예전에 얼굴을 익히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 친해질 줄이야. 다른 친구와 다르게 학교 폭력이란 지독히 괴로운 기억과 경험도 함께 겪었는데, 그 고난의 시간을 슬기롭게 통과하며 오히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끈끈한 사이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3년 내내 짝으로 허물없는 친구이자 친한 그룹과 어울리게 해준 경민이는 20대 중반까지 기꺼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주말 저녁에 친구들과 피시방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같이 게임 하자고 연락해 줘서 졸업 후에도 동창들과 소중한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비장애 친구들로 분류해 소개했지만, 내가 가진 장애가 우리 사이에 큰 문제가 아니며, 마음이 잘 통하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우정으로 가깝게 지내며, 오래 남을 살가운 추억을 가득 안겨주었다. 이제 청년을 지나 40대 중반에 이른 친구들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는 든든한 나무를 닮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그들의 평범한 삶이 내게만 허락되지 않는 축복처럼 부러웠다. 난치병과 최중증 장애의 이중고에 놓인 내 일상은, 친구로 공전했던 친근한 우리들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철이 들수록 조건의 다름을 넘어 서로를 향한 믿음과 위로, 응원의 마음이 커간다. 그 순간만큼은 장애와 비장애가 사라지고, 귀한 인연으로 마주하며 서로를 비추고 품어주는 각별함을 확인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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