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착한 장애인을 넘어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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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픽사베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픽사베이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내가 세상과 소통해 온 삶의 풍경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별된다. 첫째는 일반 학교에서 매우 희귀하고 도움이 필요한 장애 학생으로, 둘째는 병원에서 검사받고 치료받는 재활환자로, 마지막은 장애 커뮤니티에 뒤늦게 참여하게 된 중심에서 비켜난 비주류로 지내왔다.

장애인 청년들 사이에서 나는 대학병원과 자조 모임 어디에서도 듣거나 만나보지 못한 외부인에 가까웠다. 그들은 일찍부터 1985년에 설립된 잔디회 한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를 거치고, PC통신을 매개로 친분을 쌓아왔다. 오랜 만남으로 근육 장애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 온 집단에 갑자기 합류해서 서먹하고 부끄러웠다.

의도하지 않게 학창 시절과 청년 시기 모두 경계 밖에 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장애 사이에 마이너 장애 학생이었다가, 장애 사이에 비주류 청년으로 지내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비장애 중심의 시선과 가치관이 자리 잡았고, 그 믿음에 한 치의 의문도 품어본 적 없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태도로 여기며 자기를 망각하고 살았다.

장애 커뮤니티에 받아들여졌을 때 이제 다름이 기본값이 되었으니 숨기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금방 사라지고, 음악방송 디제이이자 운영진으로 참여하면서, 두루두루 어울리고 다정다감한 관심과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온·오프라인의 영역을 넘나들며 세상의 억압을 허물고, 사회의 소수자라는 고립에서 벗어나 참여로 나아가는 날들이 기뻤다.

하지만 완벽하고 눈부셨던 우리만의 세계는 산산이 깨져버렸다. 가까운 근육병 형이 나에 대해 떠도는 나쁜 소문을 들려주었고, 그 출처가 병원에서 알고 지낸 동생인 걸 밝혀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로 단체방에서 저희끼리 조롱과 험담을 이어가던 참이었다. 그에게 정식으로 문제 제기해서 응당한 사과를 받았지만, 가슴 한구석에 꺼림칙함이 길게 남았다.

또한 커뮤니티 안에서 회원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긴밀하게 얽혀서 누구도 선뜻 말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유게시판 관리를 맡았던 내가 나서야만 했다. 소모적인 언쟁이 이어져서 몇 차례 경고 후에 문제의 게시물들을 지웠다. 근육병 환우들이 자발적으로 친목과 정보를 나누는 취지에 맞지 않고, 우호와 연대를 망가트리는 행위를 두고 볼 수 없다고 대응했다.

근육병이란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우리는 성향과 가치관이 매우 다른 청년들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갈등과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중재와 화해로 두 회원과 자조 모임의 평화와 상생을 찾아야 했는데, 불씨를 끄기 급급했던 게 아쉽다. 그렇게 작은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데에도 구성원들 간의 민주적인 합의와 조화로운 참여가 중요하단 걸 절실히 깨달았다.

코다(농인 부모에게 나고 자란 청인 자녀)로서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는 이길보라는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 말한다. “저는 농인 부모님의 세상이 견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사회가 항상 밝고 아름답기만 할 거로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 누군가를 대상화하여 무조건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건 또 하나의 선입견이 아닐까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 말이에요.”

나 역시 비장애 중심주의의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장애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모양이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차별과 혐오에 놓인 장애 당사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길 기대했기에, 연대를 깨트리는 나쁘고 못난 모습들을 보았을 때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났었다.

경계에 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서로 다른 집단의 모순과 갈등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고독하고 위태로운 삶에서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차이보다 공감할 부분이 많고, 인간의 나약함에서 사랑도 미움도 자라는 걸 배웠다. 착한 장애인이란 대상화를 넘어, 존엄한 사람이자 동등한 시민으로 일상을 가꾸고 사회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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