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장애가 있어도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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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멈추지 말라는 글이 화면에 나타나 있다. ⓒ픽사베이
▲배움을 멈추지 말라는 글이 화면에 나타나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나는 통합교육을 받은 휠체어 장애 학생이었다. 하지만 30여 년 전엔 학교의 접근성과 지원 프로그램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서, 등하교와 이동, 소풍 같은 활동은 모두 어머니의 수고로 이뤄지고, 학업 중의 어려움과 학급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간에 적응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소수자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잘 어울리고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선 다수에게 맞추면서 무해하고 착실한 학생으로 보이는 생존 전략이 필수였다. 그러나 겉으로 의연하고 자신감 있게 지내려고 애쓸수록 속으로 상대적 비교에 의한 박탈감과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감에 시달렸다. 조회나 체육 수업에 불 꺼진 텅 빈 교실에 홀로 남겨지면 나도 모르게 정적 속에서 방전돼 버린 듯 조그마한 몸을 움츠렸다. 창 넘어 운동장에서 줄을 맞추어 차분히 행진하거나 활기차게 운동하고 열렬히 응원 보내는 아이들의 어울리는 모습들을 오래도록 두 눈에 담아보면서.

가장 바란 건 친구를 사귀어 우정으로 허물없는 사이가 되는 일이었다. 아프고 불편한 몸 상태에 주눅 들지 않고, 비장애 학생들과 최대한 동질감을 형성해 보려고 노력했다. 우등생이 되긴 힘들었지만, 장애가 걸림돌이 아닐 정도로 가까워진 몇몇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드는 추억들을 함께 만든 게 기쁘고 뿌듯했다.

형식적인 통합교육을 거치며 크나큰 수치심과 외로움에 흐느꼈다. 동시에 소소한 연대감과 충족감에 흐뭇했다. 그 헐겁고 부실한 시스템은 뜯어고쳐야 마땅한 불평등의 기울어진 현장으로 나타났지만,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면 근육병으로 발생한 나의 고통과 상실, 장애에 고립되지 않도록 비장애인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귀한 체험학습이 되어주기도 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단 한 번도 학교와 아이들이 싫거나 미워지진 않았다. 같은 반 친구가 꿈에서 “네가 걸었어”라고 반갑게 맞으며 그렇게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순간에 내 장애를 잊을 만큼 편안해졌고, 선생님들과는 인사와 농담을 나누는 것도 일상이 될 정도로 원만해졌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체득한 덕분에, 20대에는 사촌 누나가, 자기 직장 동료나 후배와 평범하게 얘기 나누는 착각이 들 정도로 보통 청년과 다르지 않다며 웃었다. 지금도 주변에서 내가 쓴 페이스북의 포스팅이나 카톡 메시지를 보면 아프고 장애가 심한 사람인지 실감 나지 않을 만큼 편하고 자연스럽단 칭찬을 듣는다.

장애인의 교육권을 둘러싼 이슈는 현재진행형이다. 구세대가 마주했던 차별과 배제의 사태가 개선 없이 반복되거나 근시안적 정책으로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지기도 한다.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지역주민과 학부모 간의 복합적 갈등, 통합교육을 받는 발달장애 학생을 두고 벌어진 학부모와 특수교사 간의 분쟁 등으로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장애 혐오가 뜨겁게 일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른 25세 이상 전국 등록 장애인 중 55.2%가 중졸 이하의 학력이라는 통계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 진입을 자축하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의 소외된 교육권뿐 아니라 이동권과 접근성, 노동권 등이 아직도 충분하게 보장되지 않고, 차일피일 후순위로 밀어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장애 학생을 위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같은 접근성 강화나 학습과 활동을 위한 지원인력 및 프로그램이 충분히 보장됐다면 어머니의 전적인 희생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가 겪은 소외나 배제 없이 공부와 활동에 더 집중하고, 비장애 선생님들과 학생들 간에도 더 가깝게 소통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장애인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부족하고 친절하지 않은 장애교육 시스템 안에서 좌충우돌하며 박탈감과 소외감을 아프게 겪고 있겠지만, 그에 지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의 장애를 수용해 가며 세상에 도전하길 응원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대에 공부하고 성장했어도 각자가 배우고 체험한 학교와 교육의 이야기를 알리고 나눌 때 장애인의 권리가 더 실현된다고 믿는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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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nang@naver.com'
김난희
2 months ago

소중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귀한 생각 저희 아이들에게도 잘 전하고 나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