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인간의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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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의 엘시티 건물
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동네에 같이 살던 사촌동생들과 게임을 하면 언제나 난 이길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아이들 가운데에서 한두 살의 나이 차는 머리 하나쯤의 덩치의 차이였고 글자를 알고 모르는 정도의 지적 불균형이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달리기를 해도 퀴즈를 풀어도 동생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따금씩 맛있는 간식이나 재미난 장난감을 상품으로 걸고 우리들과 놀아주시곤 했는데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대부분은 내 차지가 되었다. 한 꾸러미의 상품을 들고 의기양양해 하던 내게 충격적인 기억이 있다면 예상과는 정반대로 경험하게 된 어머니의 호된 꾸지람이었다.

분명히 난 정당한 경쟁의 대가로 영광스러운 전리품을 받아들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빈손으로 어깨가 축 처진 동생들을 가리키시며 꽤나 엄하게 나를 혼내시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끝까지 억울해하며 대들던 나를 내버려 두고 동생들에게 더 큰 과자를 사주시던 어머니의 이해가 안 되던 행동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옳았다.

내 동생들은 항상 이기는 형을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가 아니었다. 나에게 두 손 버거운 과자들은 다 먹지도 못할 욕심의 영역일 뿐이었고 나 한 명의 기쁨은 다른 동생들의 우는 상황만을 반복해서 만들고 있었다.

동생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형과는 놀지 않으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난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굴하게 인정해야 했다. 때로는 져 주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해야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놀 수 있었다.

요즘 부동산 관련 뉴스들을 보다 보면 어릴 적 동생들과 놀던 때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재산을 늘려간 사람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규제와 세금들이 억울하고 못 마땅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목적이 어떠했든 그것은 불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다수는 정말 살뜰히 아끼고 개미처럼 일해서 스스로 살기 위한 집 한 채 혹은 자식을 위한 또 한 채 정도의 소유였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만 합법이라고 해서 수십 채씩 주택을 소유하고 의도적으로 집값의 상승을 도모한 사람들까지 이해해 주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정보 독점을 이용한 투기 행태는 과자 한 묶음 들고 으스대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호된 회초리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다.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마저도 무한 경쟁의 도구이자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처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너무 많다. 돈 많고 정보 빠른 몇몇이 독점하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을 올리는 동안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그중 한 채라도 붙잡기 위해 평생을 아등바등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집은 인간에게 있어 꼭 필요한 것이기에 그러한 발버둥은 되풀이되고 대물림된다. 투기꾼들은 그러한 생리를 알고 이용하는 괴물들이기에 합법적이지만 이기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역겹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경쟁이라는 것이 그 속도를 빠르게 하고 모양을 보기 좋게 만들어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쟁은 양보와 나눔이 동반된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이 함께 해야 한다.

누군가가 잘 살기 위해 다른 이는 길바닥에 쓰러져야 하겠는가? 어떤 이가 배불리 먹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굶어 죽을 운명을 맞이해야만 하는가? 세상은 어떠한 완벽한 법과 규칙이 마련되어도 강한 자와 덜 강한 자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인간의 인간다움이다.

돈을 버는 것은 물질적 가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권한을 잠시 양도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벌었다면 폼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기본적인 먹고 살고 입는 것으로는 장난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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