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부동산, 장애인 그리고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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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이 존재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장벽 또한 없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뿐이고 아직 덜 두드렸을 뿐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이 깨지는 데에 100여 년이 걸렸다.”

겨울방학 중이라 여느 때보다 모임이 잦다.

두서너 명 만 모이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강남 3구, 갭 투자 그리고 청약이 어쩌고 하는 소위 ‘부동산’이다. 성별과 세대를 뛰어 넘는다. 어르신을 만나도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대학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생 중에도 꿈이 건물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전 국민의 제1 관심사가 부동산이라도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내가 가르치는 시각장애학생이 어떤 계기로 “선생님, 우리도 노력하면 집을 살 수 있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거침없이 “누구나 적당히 노력하면 집 한 칸 정도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정상적인 사회, 평등한 국가 아니겠니?”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게 가능해요?”라고 되물으면 “너희들의 미래에는 그럴 수도 있단다.”라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런 생각을 가진 나조차도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나도 최소한의 투자는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자주 한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의 거품이 정상적인 보통의 범주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소수의 다름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혹은 개선도 그와 많이 닮아 있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개인 의견을 물으면 마치 사람들은 초등학교 수준의 도덕 문제만큼이나 쉽고 명확한 대답들을 내놓겠지만 현실의 상황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장애인의 존재 가치 또한 그렇지 않은 이들과 분명히 동등하다고 외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 되거나 혹은 장애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판단은 당초 생각과 늘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별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은 하더라도, 그 경쟁의 대상이 바로 나라면 대답은 달라진다. 역시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또 현실이라는 씁쓸한 결론을 맺는 때가 많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각을 바꾸려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런 나에게 또다시 묻는 다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인식 수준을 다수가 갖춘 세상은 불가능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것들은 가능성이 낮은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이루어 질 수도 있다는 작은 믿음 정도는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역사적인 수상 장면들은 그것이 현실이 되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바람 혹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이상의 영역이었다.

백인들의 폐쇄적 우월의식, 전통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된 영화계의 편견들, 아시아인 스스로도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던 불확실성들이 버무려져, 간절하지만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또 하나의 꿈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어려움이 불가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노력하면 낮은 가능성의 일들도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도,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휴대전화나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을 때도 비슷한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시 전까지는 불가능이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되었다. 단단한 장벽이 존재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장벽 또한 없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뿐이고 아직 덜 두드렸을 뿐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이 깨지는 데에 100여 년이 걸렸다.

강남의 부동산 장벽도 성실한 보통사람들에게 언젠가는 깨어질 것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왜곡의 벽들도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 바람이 옳은 것이고 지속적이기만 한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은 없다고 믿는다.

세상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다른 봉 감독들이 새로운 ‘기생충’으로 수많은 장벽들을 허물어뜨리는 환희의 장면들을 기대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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