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빈곤]기초생활수급권자는 적용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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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복지지원법 제2조에서 정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해당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일 경우에는 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박관찬 기자
  • 긴급복지지원제도, 기초생활보장수급권과 중복 수혜는 안 돼
  • 중복 수혜를 통해서라도 소득 보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장애인이 빈곤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될 수 있다면 빈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서울시 권리중심 일자리를 가진 장애인 수백 명이 무더기로 해고되었던 사실에서 보듯, 소득 보장을 위해 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는 상황도 쉽지 않을 뿐더러 취업하더라도 정규직에 대한 희망보다는 언제 해고될지 걱정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 중에서 빈곤에 처해 있는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빈곤으로 인한 위기가구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긴급복지지원제도’인데, 실제 빈곤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장애인이 이 제도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을까?

빈곤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장애인이 해당 제도의 적용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제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긴급’하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 ‘위기 상황’이 닥쳐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긴급복지지원법에서는 위기상황에 해당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긴급복지지원법 제2조] 이 법에서 “위기상황”이란 본인 또는 본인과 생계 및 주거를 같이 하고 있는 가구구성원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인하여 생계유지 등이 어렵게 된 것을 말한다. <개정 2010. 1. 18., 2012. 10. 22., 2014. 12. 30., 2018. 12. 11.>

1. 주소득자(主所得者)가 사망, 가출, 행방불명, 구금시설에 수용되는 등의 사유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2.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

3. 가구구성원으로부터 방임(放任) 또는 유기(遺棄)되거나 학대 등을 당한 경우

4. 가정폭력을 당하여 가구구성원과 함께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기 곤란하거나 가구구성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경우

5. 화재 또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거주하는 주택 또는 건물에서 생활하기 곤란하게 된 경우

6. 주소득자 또는 부소득자(副所得者)의 휴업, 폐업 또는 사업장의 화재 등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영업이 곤란하게 된 경우

7. 주소득자 또는 부소득자의 실직으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8.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9. 그 밖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

[전문개정 2009. 5. 28.]

해당 규정의 내용 중 어디에도 ‘장애’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반드시 장애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도 위 내용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면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

기초생활수급권자이면서 최저임금 이하로 근로를 하던 장애인 A 씨는 근로계약이 만료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기초생활수급비에 약간의 근로소득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오던 A 씨에게 실직은 생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건강도 좋지 않아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 이에 A 씨는 ‘위기 상황’이라 판단하고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신청 불가’였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으로 생계유지 등이 곤란한 저소득 위기가구를 신속하게 지원하여 조기에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가정해체나 만성적 빈곤 등을 방지하는 제도이다. A 씨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 씨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다른 법률에 의한 동일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는 거죠. 사실 동일한 보호라지만 기초생활수급권은 계속 지급되고, 긴급복지지원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지원해주는 제도잖아요? 그런데 중복 수혜라고 안 된다는 겁니다.”라고 이해되지 않는 제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A 씨의 주장에 의하면, 실업자가 되면서 근로소득이 끊기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곤란해져서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했단다. A 씨의 이전 직장은 최저임금도 되지 않고 단기간 근로계약이었기 때문에 실업급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건데, 기초생활수급권이라는 자격이 때 아닌 걸림돌이 된 것이다.

A 씨는 “저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실직’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중복 수혜라고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하며, “이럴 거면 직장에서 최저임금 이상이라도 근로소득을 보장해줬으면 저축이라도 꾸준히 했을 텐데, 근로소득이 얼마 안 되니까 생계에 투자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A 씨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언제든지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맞는 지원제도는 정말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무엇보다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중복 수혜도 가능해지면 좋겠다. 장애인에게 최저임금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이런 것도 안 된다면 정말 장애인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고 목소리륾 높였다.

실제 수도권의 구청 긴급지원제도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한 결과,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애인은 긴급복지지원제도에서 정하는 ‘위기 상황’에 해당하더라도, 중복 수혜라는 이유로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답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뉴스의 사회면을 보면, 긴급복지지원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해당하는 장애인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학대를 당하며,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지…. 물론 그런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같은 곳이 있지만, 장애인이 어떠한 신분에 있더라도 ‘중복 수혜’를 따지지 않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중복 수혜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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