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위로가 위로되지 않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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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괜찮다는 뜻의 영문 it is well
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부바~”

첫돌 되기 전 아들은 가끔 포대기를 가지고 집안일 하는 내게로 와서 업어달라고 했다.

“어? 그래그래~ 엄마 설거지 끝내고 업어줄게.”

그러면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아들이었다.

또 가끔은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으냐고 물으면 엄마한테 달려와 폭 안기기도 했다. 그뿐인가, 엄마가 출근할 때 가지 말라고 옷을 잡아당기기도 해서 몰래 출근했더니 베란다 구석에서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과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자폐성 장애인이다. 어렸을 때의 그 귀여웠던 행동은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던 누군가의 예언을 인정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을 건너왔다. 아니 지금도 터널을 건너는 중이다.

그나마 어렸을 때보다는 훨씬 밝은 편이다. 특수교육으로 아들이 장족의 발전을 해서가 아니라, 아들은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걷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달라진 까닭이다.

아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세상이 끝난 것처럼 좌절하는 내게 친정엄마는 말씀하셨다.

“괜찮을 거여, 너나 정서방이나 죄지은 것도 없는데 느들 애기가 그럴 리 없어, 암만! 절대 그럴 리 없지.”

분명 엄마는 내게 위로의 말씀으로 하신 건데 그 순간 눈물을 닦으며 내가 했던 말은

“무슨 말이여 엄마? 그럼, 세상 장애인들은 모두 죄를 지어서 그렇다는 거여?”

당황해하시는 엄마 앞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위로의 말로 위로는 받지 못했지만, 엄마 앞에서는 울어도 될 것 같아 목 놓아 울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내게 친정엄마와 같은 종류의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아들이 인물은 참 좋은데 쯧쯧쯧…’
‘장애아 엄마치고 표정이 참 밝아요.’
‘너니까 그런 애 키운다, 나 같았으면 아마 포기하고 말았을 거야.’
‘아니, 말을 못 해? 멀쩡하게 생겨놓고 왜 말을 못 해? 듣기는 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해라. 천사들이 회의해서 잘 키울 수 있는 엄마한테 보내는 거라더라.’

분명 좋은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믿는다. 말이란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이 걸러서 듣는 것이니 처음 몇 번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처음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수없이 듣다 보니 위로가 아니라 화를 돋우는 말로 들린다. 말하는 사람은 절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몇 번씩 듣는 사람은 매우 언짢다.

장애인은 인물이 나빠야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고, 장애아 부모는 우거지상을 하고 다녀야 처지에 맞는 얼굴이고, 너는 장애아 부모 자격이 되니 너한테 그 아이가 간 거라는 말에 ‘나도 죽지 못해 산다’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건가? 이 모든 건 대체 누가 만든 상황인지 묻고 싶다.

예전에 높은 양반이 장애인 시설을 둘러보고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없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습니다.”

장애인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이 말에 대해 반감이 없다면 그는 분명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누가 누구를 함부로 동정하고 나를 빗대어 자신의 행복을 깨닫는단 말인가. 행복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임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 아니겠는가.

장애인이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사람은 불행할 수 있다. 비장애인이라서 행복한 게 아니라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다.

몰라서 내뱉는 말이라면 교육이 필요하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내가 남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를 바꿀 수는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내가 나를 바꿀 용기와 지혜가 있다면 내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나도 아들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로 남을 위로한답시고 많은 말을 뿌리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영원한 스승이지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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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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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famina
3 years ago

멋진글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도움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Admin
조성민
3 years ago
Reply to  famina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