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사회성이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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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
사회성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Pixabay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여덟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앞서 제기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 본성과 사회가 일으키는 폭력을 우리는 당연시해왔고, 그것을 오랫동안 문제 삼지 않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는 국민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폭력이 성행하고도 이상하게 느끼거나 고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 피해를 누군가는, 더군다나 자폐당사자를 포함한 정신적 당사자들이 우선하여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은 다뤄지기는커녕 놀랍게도 그 자체가 문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폭력과 범죄에 대한 민감함이 없어 폭력을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 속에 삼청교육대, 실미도, 형제복지원 등 강제 수용자와 같은 억울한 이들이 많고 폭력이 전 사회에 만연해 있을 때는 민감함이 커진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잔혹성이 인터넷으로 보도되자 학교 내에서의 ‘훈육’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밝혀지면서 학교 폭력이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스포츠계, 연예계나 연극계 내 만연화되어 있던 폭력도 마찬가지다. 드러나고 나서야 해결되거나,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성폭행도 그렇다. 2016년 5월 이전까지 많은 사람이 성추행과 성폭력에 무관심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사회의 생각이 이완되어 가면서, 폭력에 대한 민감함이 회복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폭력을 당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갚아줘야 한다는 마음이다. 최근에는 군대에서 사병 간 폭력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많은 예비역이 부정적인 입장에 있다. 이들 주장의 핵심에는 보상심리가 있다. “나도 고통을 당했는데 내 후임은 더는 당하지 말라고?”라는 그들의 외침에는 ‘내가 받은 고통은 큰데 그것에 대해서 정부가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은 같은 직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대로 물리던가, 아니면 그 보상을 소급적용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기제로는 복수심이다. 자폐당사자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폐당사자가 학교 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자폐당사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를 품게 되면서 그것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폭력에 가담하는 일이 해외에서 보고되기도 했다. 자폐당사자도 폭력이 심하면 교도소에 갇히는 사례도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해서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복수하기 위해 직접 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기제의 발현은 자폐 특성과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침묵해서는 안 된다.

폭력 상황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폭력이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알리고 폭력을 예방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제도가 있다면 그것을 분명히 제거하고, 더불어 그동안에 해당 제도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보상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정상화가 장애인 인권의 확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당사국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대부분의 자폐당사자가 가지는 분노와 좌절감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자폐당사자들은 사회 주변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 성인 자폐당사자들이 받은 폭력의 정도가 어떠한지, 그리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분노의 정도가 어떠한지, 이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 성인기 ‘발달장애인’ 논의가 정신적 당사자의 삶의 질보다는 서비스 제공과 일부 제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신적 장애인이 상담과 대화를 통해 개인의 분노를 풀고 사회 내에 포함될 기회를 높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인이 삶에서 느끼는 것에 대한 정신과적 상담이 개인의 ‘치료’를 위해서만 이용되기 때문이다. 정신적 장애인의 정신건강은 더더욱이나 당사자의 범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합당하다.

최근 다수의 국내 자폐당사자가 자신의 어려움을 사회적 구조보다는 자신의 결점에 귀속시키려는 흐름 속에 휩쓸려가는 것 같아 아쉽다. 더군다나 자폐당사자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 중 다수가 삶이 어려운 이유를 사회성 습득의 부재로 규정하고 해결 방안을 사회성 습득으로 여긴다. 그래서 기술을 익히고 학교나 회사 속에서 버텨서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고, 때로는 ‘치료’를 받아들여서 정상인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소통능력을 함양하는 것과 사회 속에서 자신이 겪지 않아도 되는 폭력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회성 안에는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것, 가지면 좋은 것과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무분별하게 습득해 로봇같이 반응하면서 감정노동을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을지 몰라도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노동은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제 이 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살펴본 결과를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첫째로, 자폐성 장애인들이 주로 가지는 신경다양성을 국가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 자체는 자폐당사자 개개인의 사회성 결여나 자폐 특성 자체가 아닌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비인권적인 문화에 기인하고, 그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폐당사자의 개선만을 촉구하는 것은 인권침해이자 불합리한 처사이다.

둘째로, 결국 통합교육을 못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 자체가 정신적 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교육목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한 교육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정신적 장애인들을 일반교육의 장에서 제거하는 것이 더욱더 쉬운 대처방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의 결정 때문에 특히 고인지 자폐당사자들이 앞으로 논할 생애주기 내에서 필요한 성장과 도약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당사국으로서 장애인권리위원회에게 이러한 비인권적 상황을 변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솔직히 현재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백년대계인 교육을 장애포괄적이자 인권적, 비경쟁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것이 장애인권리위원회 2-3차 국가보고서 사전질의목록 26항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임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인과 청소년기 정신적 장애인의 상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상담은 개인이나 보호자가 비용 부담 없이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한 방안으로, 정신의학 약품 등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이 생긴다면 소위 개인별 ‘지역사회 돌봄’ 체제나 학대 및 학교 정황의 인지, 모니터링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므로 정부가 원하는 소위 ‘평생 케어’의 기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폐당사자에게는 전문적으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며, 그러한 대화가 라포 형성으로 이어진다면 표출 못 한 선호와 슬픔, 분노, 억압감이 해소되고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었던 ‘사회성’이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무언어 증상을 보이거나 언어 사용이 적은 성인 자폐당사자더라도 텍스트나 AAC로 대화가 가능하니 시도해 보시라.

[더인디고 THE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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