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당사자를 공론장에서 밀어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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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무 인형이 한 인형을 배제하며 맞서고 있다. ©픽사베이
▲많은 나무 인형이 한 인형을 배제하며 맞서고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신경다양성 반대’를 외치는 계정이 한때 장애판 SNS를 뒤집어 놓았다. 그는 자폐‘증’이 치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치료법이 개발되길 희망한다는 글을 적어놓았다. 더불어 프로아나(섭식장애) 역시 청소년에게 섭식장애를 주입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계정은 신경다양성과 정신장애 외에도 채식주의, 성노동 등 다양한 주제에서 혐오적인 발언을 하였고,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레딧(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해외 커뮤니티)의 자폐인 커뮤니티에서 신경다양성에 반대하고 자폐 치료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관리자에 의해 게시물 삭제 처분을 받았다. 그가 발언하는 여러 주장은 인권에 대한 이해 없이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무수한 비판을 받고 게시글 삭제 처리가 된 것이 과도한 처사는 결코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공론장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해당 계정의 잘잘못이 아니다. 특정 계정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신경다양성에 반대하는 당사자를 신경다양성의 공론장에서 밀어내는 것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타인에게 있을 것인지이다.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들어보자.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더 깊은 차원의 문제로 나아가야만 한다. 신경다양성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인가?

다음과 같은 논증이 있다고 치자.
1. 인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2. 신경다양성은 인권운동의 한 갈래이다.
3. 그러므로 신경다양성은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1번 명제에서 언급된 것은 ‘인권’이고, 2번 명제에서 언급된 것은 ‘인권운동’이다. 과연 ‘인권운동’은 ‘인권’과 동일시할 수 있는 개념인가? 나의 답변은 ‘아니오’이다. 인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본권이지만, 그렇다고 인권운동이 인권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권운동은 인권 실현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운동의 갈래도 다양하고 장애운동 역시 그렇다. 비판의 가능성이 있다면 수정하거나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신경다양성과 그 운동은 성역이 아니다. 여기에 열거하는 건 어렵지만, 신경다양성 운동에는 많은 한계점이 있다. 신경다양성은 당사자 운동이기는 하지만, 모든 당사자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신경다양성의 비판자 중에서는 일부 당사자 외에도 가족 등 장애인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이도 있겠다.

신경다양성 지지자는 그러한 비판이 불편할 수 있다. 나도 그렇다. 신경다양성이 비과학이니, 허상이니 하는 글들을 보면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공론장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만일 신경다양성을 성역화하고 그 개념과 운동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이비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교조적인 운동은 외부 사회 및 다른 운동사회의 어떠한 지지도 받을 수 없다. 나는 신경다양성 운동이 그렇게 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신경다양성 반대자를 혐오자로 낙인찍고 공론장의 경계로 밀어내는 것, 다른 하나는 그들의 발언 중 수용할 수 있는 비판은 수용하고, 수용할 수 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무엇이 성숙한 토론자의 자세인지에 관해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후자일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신경다양성 비판자를 공론장에서 내쫓는 것이 정당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공론장의 다른 구성원이 그를 단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 자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이 역시 파생되는 질문을 고찰하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 당사자가 같은 당사자를 공동체에서 배제할 자격이 있는가?

당사자운동은 당사자주의를 핵심 가치로 하는 조직적인 운동이다(하경희, 2021). 당사자주의는 자기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삶의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이다(김현민, 2019). 이 정의의 어디에도 의견이 다른 당사자를 내쫓는 행위는 없다. 더불어 공론장에서 누군가를 단죄하려면 공론장의 주인 혹은 주체가 누구인지 정의해야 할 것이다. 당사자주의 공론장의 주체는 바로 당사자이다. 주체가 다른 주체를 공론장에서 제명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배제하는 순간 양자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양자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주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론장 외부에서부터 ‘제거’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공론장에 대한 간섭이고 외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결국 정도는 달라도 의견이 다른 당사자를 대면하는 것은 공론장의 숙명이다.

한 가지를 더해 실천적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신경다양성 지지자가 반대자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집단으로 비난하는 것은 사이버불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지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가 지지하는 신경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이다. 신경다양성은 신경다양인의 기본권과 프라이드, 다양한 신경발달인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운동이지, 키보드 배틀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신경다양성으로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는 말싸움을 하는 것은 신경다양성 운동을 말싸움 수준으로 격하시키고야 말 것이다.

신경다양인 당사자 판이 두 갈래로 분열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서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의 집단 괴롭힘이 아닌 집단 지성이 필요한 때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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