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미등록 자폐당사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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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
ⓒPixabay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열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Z는 최근에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부모가 자신을 자폐로 인정하는 것을 싫어해 등록장애인이 될 수 없었다. 진단을 받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 육군으로 복무하면서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관심병사로서 제대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여러 기술을 익히며 회사에 다니며 일을 했지만, 직장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잘리는 일이 반복됐다. 현재 그는 택배 기업과 다양한 일용직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기 일자리 시장에서 일하면서 조금의 돈이나마 벌려고 하고 있다.

Z에게 있어서 더 어려운 것은 부모와의 관계이다. 정신 질환이 있어서 해당 부분에 대해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부모는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을 막고, 계속해서 약을 먹으면 Z를 시설로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Z는 가출과 복귀를 반복하면서도 그들이 부모라는 것 때문에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 더 어려운 점은, 장애등록을 받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진단을 받았더라도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딱히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Y는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소통 방식에 대해 이상한 반응을 사람들이 보낼 때마다 그 반응에 맞춰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통하는지 배워 나갔다. 옷을 입으면 피부가 아파서 견딜 수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 입기 때문에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무사히 살았고, 기술직 일자리에 취업했다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계속해서 다른 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눈 맞춤을 못하는 것을 보며 자폐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좋은 병원에 연락해 상담 일자를 잡았다. 몇 개월 동안의 기다림과 기나긴 진단 과정을 거쳐 자신의 아이가 자폐성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를 상담 중이던 의사가 어느 날 Y 씨에게 조용히 ‘당신도 자폐성 장애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진단 검사를 받은 결과 사회소통장애(SCD)로 나왔다. 자신이 자폐당사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그동안 왜 그렇게 살았었지’ 하는 고민에 빠졌다.

Z 씨와 Y 씨의 이야기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각색하기는 했지만 현재 미등록 자폐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실제 이야기다. 인터넷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내 주위에는 많은 자폐성 당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보다 더 심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여기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자폐당사자라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아픔을 듣고 공감하다 보니, 그들을 위해 무언가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지난 시간에 상기한 바와 같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정책은 그동안 등록된 장애인에게만 주로 적용되어 왔다. 장애인 보호 작업이나 최저임금제 제외 판정같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취업 정책 또한 장애의 의학적 모델에 따라 존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장애의 의학적 모델은 장애를 측정 가능한 손상의 정도에 따라 줄 세웠기 때문에,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분명한 손상이 있음에도 측정 기준에 따른 측정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 등록이 되지 않거나, 재판정에서 등록에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로 최근에 IQ 판정이 70이 넘었다는 이유로 등록장애인에서 제외되었던 한 지적당사자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나은 지적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는 장애인 선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은 대한민국이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곳인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전 세계의 사람 중에서 지적 능력이 하위 2.28%에 속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장애인이 되거나 될 수 없다는 대한민국과 스페셜올림픽의 장애 차별적 행태가 실제 손상의 여부와 무관하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실증한다.

그럼 제외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비장애인과 경쟁을 하든 낙오되든 그것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대한민국 행정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물론 다행히 사회소통장애로 분류되는 데 성공하는 당사자들은 잠시 중등교육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고등교육 진학과 취업에서 그들은 더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소위 엔포세대니, 내 집 마련의 꿈이 빼앗겼느니 하며 원망하는 일반 청년의 삶보다도 더욱 취약해진다.

소위 경계선 장애 범위에 있는 자폐당사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그나마 부모가 정서적,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군역 면제를 받지 못하고 사회복지요원으로 근무를 해야 하며, 특별한 기술을 익히지 않는 한 자신의 능력을 살린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부모의 지원이 없는 경우에는 자폐당사자들의 삶은 어려워진다. 고인지 당사자의 경우에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자폐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폐 등록을 방해하고 막아서 자기 자녀가 비장애인과 동일한 길을 걸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폐당사자 자신이 본인의 자폐 특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성 부족으로 의미 짓고, 오늘도 이룰 수 없는 쳇바퀴를 굴리며 사회성이 나아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산다.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은 괜찮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일하며 마치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아무것도 아닌 양, 또한 차라리 노량진에서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며 버티는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들에 대해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기초 연구 논문도 없고 그에 따라 관련 정책 수립은 생각하기도 힘들다. 그나마 부모가 자폐에 대해 긍정적인 경우에는 자폐계에 소속되어 최소한의 지원을 받지만, 발달장애인 정책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이들을 위해 대변해 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같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연대해야 할 장애계는 보통 입을 닫기 십상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자폐당사자들의 수가 늘어나서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파이가 줄어들까 고민하기 때문인데, 어차피 새롭게 등록이 될 자폐성 장애인의 2/3는 나처럼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장애계 구성원들은 그들을 동료로서 인정하거나, 그들을 위해 함께 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의식 바깥으로 밀어놓는다. 덕분에 그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낙수효과가 그분들 덕택에 소위 경계성 장애인에게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모든 장애인이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말은 빈말에 불과하다. 자폐 특성을 자폐증으로 폄하하고, 자폐라는 단어 자체가 욕설로 쓰이고 있어도 차별을 없애겠다고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일상적 혐오 속에서, 자폐당사자 모두의 목소리가 소위 장애계, 더 나아가 자폐계에서조차 지워지는 현실에 대해 여전히 당사자들이 침묵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기만 하다. 시민 모두의 참여, 장애당사자의 참여, 그중에서도 최약자의 목소리가 우선 반영되어야 한다는 최신의 거버넌스 흐름 속에서, 누가 먼저 소리를 높여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왜 저인지 자폐당사자의 목소리부터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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