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가난하지 않은 장애인도 있다

기부를 뜻하는 'donations'라는 영어 단어가 적혀있다 / 사진 = 픽사베이
기부를 뜻하는 'donations'라는 영어 단어가 적혀있다 / 사진 = 픽사베이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특수학교 다니던 중고등학교 때엔 ‘한국마사회’의 협찬이나 후원기사가 너무도 반가웠다. 어려운 이웃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도운 명단엔 심심치 않게 그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중도에 실명한 나에게 특수학교라는 소속은 내세우고 싶은 것 보다는 부끄러운 쪽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자랑거리가 있었다면 ‘마사회’의 존재였다. 내가 어릴 적 맹학교 고등부에서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이료과목’이라는 것을 배웠다. 해부생리, 임상병리, 한방, 침구, 보건… 으로 이어지는 이론과 안마실습, 침실습, 전기치료로 이어지는 실기과목을 모두 합치면 매주 20여 시간을 안마사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투자해야만 했다.

하교 후의 시간을 쪼개고 밤을 새워 가면서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공부한 몇몇의 형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안마사의 진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각장애인에게만 보장된 안마업은 그 때까지만 해도 벌이가 나쁘지는 않아서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었다는 선배가 맛있는 것들을 잔뜩 사 들고 모교를 방문하기도 했고 사업수완 좋다는 어떤 선배는 빌딩을 몇 개나 샀다고도 했다.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치료도 하는 안마사라는 직업은 훌륭한 역할임에 틀림없지만 내게 있어서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거부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내신 때문에 이료교과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실력 있는 안마사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까지 동의를 할 수는 없었다. 형들은 각자를 예비 안마사라고 여기고 서로에게 안마를 해 주고 침을 놓아주곤 했다. 그리고는 그 직군에 종사하는 이들을 줄여서 ‘마사’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마사들의 모임인 마사회가 TV에도 신문에도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었다. 안마사는 마사이고 그들의 모임은 마사회라는 건 내겐 당연한 연결이었다. 학교가 자랑스러워지고 그동안 함께한 선배님들이 너무도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돈도 많이 버는 능력자에다가 선한 일에 앞장서는 멋진 어른! 정말 닮아가고 싶은 존재였다.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선배들에게도 말했다. 다들 반응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호들갑 떠는 신입생에 대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정말 그렇게 믿었다. 어느 어른의 차분한 설명이 있을 때에도 그건 어르신이 말타는 아저씨들과 안마하는 선배들의 모임 명칭이 같아서 착각하시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국마사회’가 나의 선배들 그리고 안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날 나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난 또 다른 꿈을 가지게 되었다.

장애인들의 모임도 진짜 누군가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역할을 하지 못 할 이유는 없다. 마사회의 자선사업이 안마사와 관련은 없었지만 돈 잘 버는 선배 장애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었다.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의 대표적 모델은 장애인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장애인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아직까지도 장애인의 취업이나 경제활동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제한적이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장애=가난이라고 단정하기엔 먹고 살만한 이들이 많다. 언젠가의 소문처럼 빌딩을 몇 개씩 가진 장애인들도 있고 꽤나 큰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수십 년째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받아가는 대표적 모델은 여전히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약한 존재, 도와야 하는 존재,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낙인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러 장애인이 말한다. 하지만 그 어떤 통 큰 기부 명단에서 장애인 단체의 이름을 본 적 또한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빈국에서 선진국 소리 듣는 시간까지 오게 된 것은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울 수 있는 나라로 이미지 변화를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하면 무조건 가난하다는 편견을 깨는 것도 그렇게 해야 답이 보인다. 능력 있는 시각장애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멋지게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고 싶다. 마사회 아닌 진짜 안마사협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큰 기부를 했다는 뉴스를 듣고 싶다.

나눔을 아는 장애인! 그건 이제 나의 또 하나의 꿈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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