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당신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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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카메라로 찍는 모습, 자화상
ⓒPixabay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난 거울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난 자존감이 매우 높은 편이다. 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면서 상상 속 나의 얼굴은 내가 마지막으로 거울을 볼 수 있었던 파릇파릇한 13살의 어린이로 남아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긍정적인 쪽으로는 성장했지만, 부정적 요소는 거의 추가되지 않았다. 성숙해지기는 했지만 늙지 않았고 어른스러워지긴 했지만,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가끔 흰 머리 몇 가닥을 지적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도 내겐 그저 새치라 여겨질 뿐이다. 결론적으로 내 머릿속 나의 현재 외모는 젊디젊은 20대 청년의 모습이다. 그런 탓으로 가끔 우연히 나의 실제 나이를 자각하게 될 때는 새삼스러운 놀람과 함께 살짝 짙은 서글픔 같은 것들이 밀려오곤 한다. 요즘처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는 특히 그렇다.

별생각 없이 스무 살 무렵에 머물러 있는 내 생각 속 얼굴은 40을 넘어가는 실제 숫자와 혼란스러운 동기화를 시도한다.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하고 뽀얀 얼굴과 예전에 봤던 40대 아저씨의 얼굴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시대가 흐르면서 전체적으로 동일 나이대의 외모가 젊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고 설명하기엔 상상과 현실 차이는 너무 크다.

갑작스럽게 체력이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살짝 더듬어 보는 얼굴엔 왠지 주름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괜스레 피곤했던 것도 나이 탓이었던 것 같고 스치듯 말했던 주변의 말들도 모두 내 나이와 관련했던 것처럼 되새겨진다.

가만가만히 내 몸을 더듬어 살펴보기도 하고 헬스장의 기구들로 나의 신체 상태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기분 탓으로 뭔가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별 차이는 없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모르겠다. 스무 살 때 혹은 서른 살 때에 비하면 내 몸 어딘가에는 나이가 든 흔적이 남아있긴 하겠지만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그것들이 지금의 나의 시간을 위축시킬 만큼 유의미하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긴 하지만 인생 전체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아니다. 한 가닥 흰 머리나 한 줄의 주름은 내 삶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난 여전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새롭게 꿈꾼다.

내가 상상하는 나의 얼굴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실제의 나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젊은 비현실일 수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실제 내가 집중해야 할 나의 상태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 그리고 변해가는 외모를 거울로 보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숫자가 커지고 외모가 변하는 것이 그 사람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난 잘 모르지만 난 여전히 젊고 아직 매우 뜨겁다. 난 거울을 보지 못하기에 외모의 변화가 주는 무기력함에서 다른 이들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가 오는 동안 나 또한 잠시 나이 먹음을 쓰린 마음으로 겪어가겠지만 어느 틈엔가 내가 떠올릴 나의 외모는 또다시 가장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거울에 보이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작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숫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 나는 거울이나 달력 속에 있지 않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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