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우리 같이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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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의 조이스틱/사진=픽사베이
게임기의 조이스틱/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오랜만에 방문한 동생의 집에는 재미있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볼 수 있던 커다란 레트로 게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화면도 소리도 조이스틱도 예전 그대로인 것을 보는 순간 난 일단 의자에 앉았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3000여 개의 저장된 게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스트리트 파이터2’를 고르고 역시나 내가 제일 좋아하던 캐릭터인 ‘가일’을 선택했다. 물론 음성지원이나 스크린리더 같은 것은 없었으므로 고르고 선택하는 것은 동생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쿵쾅거리는 특유의 배경음이 나오고 캐릭터를 고를 때 나오는 ‘착착’ 소리도 들렸다. 라운드가 시작되고는 ‘퍽퍽’ 하는 타격음과 장풍이 날아가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30여 년 전 꼬마의 신났던 상태가 되었다. 어릴 적 엄마 몰래 백 원짜리 몇 개 들고 들락거리던 오락실에서의 짜릿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사람들은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여가의 시간을 찾는 것 같다. 처음엔 고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보내기도 하고 바쁘게 지내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적인 쉼을 가지기도 했지만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라 주어진 상황 내에서 최선의 놀거리를 또 다시 열심히 찾는다.

동생도 그런 의미에서 거금 투자해서 레트로 오락기를 들여놓은 듯하다. 내장된 3천여 개의 게임이라면 꽤 오랫동안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잠깐의 오락 몇 판에 나 또한 완전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되었던 걸 보면 그 판단은 현명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떤 게임도 나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리 긴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게임의 효과음들이 추억에 젖게 했고 조이스틱을 쥐고 흔들 때 그 느낌에 전율하긴 했지만 그건 잠깐의 감정일 뿐이었다. 난 내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기는지 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승부가 정해지는 게임에서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는 이들의 입장일 뿐이다.

오늘을 사는 대다수의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즐겁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그건 다수뿐만 아니라 소수인 나도 그렇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은 굉장히 답답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새로운 놀거리가 필요하다. 나도 그렇다. 장애인을 불우이웃이라 부르며 빵을 나누던 시간은 지나갔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레트로 게임기 앞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싶다. 함께 먹고 사는 것을 고민했던 것처럼 함께 즐기고 놀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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