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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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 남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실수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오래전 아는 형님 집을 방문했다가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즐겁게 모임을 시작했는데 형님도 기분이 많이 좋으셨는지 진열장에 놓아두었던 값비싼 위스키까지 꺼내주셨다. 술 좋아하는 어린 나에게 그건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에덴동산의 선악과이기도 했다.

내 나이보다도 많았던 30년산 위스키의 라벨에 흥분했고 처음 마셔본다는 설렘이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뜨거운 느낌에 격한 환호를 내질렀다. 그런데 그 이후의 기억은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르게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누워있는 곳은 민망하게도 안방의 침대 위였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민망함과 죄송함의 감정들은 어느새 공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의 복잡한 머릿속은 점점 더 카오스를 향해 달려갔고 그 상황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고 난 내려질 극단의 처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껄껄 웃으며 “잘 잤니? 어제 기억은 전혀 없지? 술이 무섭긴 무섭지?”

내 예상과 달리 형님은 호탕한 웃음을 짓고 계셨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

“이거 마시고 속이나 풀어라. 다른 이야기는 할 것 없다.”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괜찮다며 형님은 내게 꿀물 한잔을 건네주셨다. 깨끗하게 빨아서 말려진 내 옷가지를 건네주실 때야 내가 입고 있는 옷마저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천하의 망나니짓을 한 동생에게 형님은 해장국까지 끓여주시며 극빈의 대접을 해 주셨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오히려 위로를 건네시던 목소리는 그날따라 더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형님은 나를 꾸짖을 수도 있었고 설령 내쫓았다 하더라도 난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본인도 젊을 때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면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은 그 어떤 명령보다 내게 강력한 작용을 일으켰다. 형님은 절대로 본인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나중에 다른 후배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나도 그렇게 해 주라고 하셨다.

술 먹고 저지른 커다란 실수가 자랑할 일도 아니고 굳이 되새기며 글로 남겨 놓을 일은 아니지만 그 날의 경험은 내게 있어 너무도 큰 공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성공하는 길만 걷고 싶어 하지만 인간이기에 의도한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는다. 술 한 잔을 먹더라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품위 있고 멋지게 먹고 싶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러기는 어렵다.

만약 형님이 평생을 점잖은 술자리만 가졌다면 나를 이해하는 힘은 가지지 못하셨을 것이다.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이해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이해의 힘이야 말로 다른 이의 실수를 고쳐주는 강력한 힘이다.

난 누구보다 많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안 됐고 불쌍한 사람으로까지 여길 수 있지만 내게 있어 그것들은 또 다른 큰 자산이다. 내가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나의 실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확신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한 아이의 실수를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그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알고 있다. 난 너무도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받고 용서 받음으로써 어떤 처벌보다 효과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 이로 인해 다른 이의 실수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고 그것은 내 삶의 또 다른 재산이 되었다.

실패를 겪어 본 사람들이 성공만 경험한 사람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훨씬 더 넓고 크기 때문이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은 나를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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