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칼 건네기_왼쪽과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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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지팡이 짚고 혼자 길을 다니다 보면 참으로 마음 따뜻한 분들을 만나고는 한다. 때때로 그 마음의 행동발현이 나의 상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불편함이 될 때도 있지만 그 분들의 진심이 무엇인가를 떠올리면 감사하고 기분 좋아지는 때가 많다.

요즘 출근길에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미리부터 알려주시는 어르신들을 아침마다 만나곤 한다. 매일 보시는데도 내 걸음이 불안하신지 볼 때마다 “왼쪽으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가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신다. 실제로 그분들의 방향 지시가 내 보행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기분 좋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미소를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왼쪽”을 외치는 아저씨의 지시가 들리면 난 정반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정확한 나의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함께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등장하셔서 “그건 당신이 서 있는 방향이고 저분 입장에서는 오른쪽이지요.”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 때뿐일 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저씨의 방향 지시는 왼쪽을 가리킨다.

아저씨는 늘 나를 마주보고 서 계시고 눈이 보이지 않는 나에겐 당신의 방향 지시가 꼭 필요하시다고 느끼시고 본인 입장에서 주관적 확신을 담아 날마다 반대방향을 소리 높여 외치신다. 물론 그분이 내뱉는 목소리와는 달리 어르신의 의지는 나를 오른쪽으로 안전하게 가게 하시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한 불평이나 항의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가던 길을 간다.

그러나 마음이 아무리 선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내가 처음 가는 낯선 길에서 그런 안내를 받았다면 난 심각한 위험에 처하거나 매우 불쾌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른쪽이나 왼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단번에 신뢰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도움도 많이 받고 또 다른 이들을 많이 도우면서 살려고 노력도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도우려는 마음이 그것을 받는 이에게 도움으로 온전히 전달되는 것은 생각보다 낮은 확률을 갖는다. 개인적인 고민이나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에게 교사된 마음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아이에게 나의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어른의 입장일 뿐일 때가 많다.

본인이 가진 재능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구를 개발했다고 찾아오는 분들도 종종 있지만 그냥 그들의 생각일 때가 적지 않다. 선물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며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내 입장에서 귀한 것이지 받는 이의 입장이 고려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거나 갖고 싶은 것이었다면 그는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숨기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주어졌고 그것은 철저히 자기 기준을 따른다.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 번 나를 위해 고민하는 내 머리가 다른 이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관성이나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상대의 방향에서 생각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칼을 건네줄 때 손잡이 쪽을 내가 쥐고 있는 것과 상대 쪽으로 돌려주는 것은 작은 생각의 차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큰 차이를 만든다. 내가 바라보는 왼쪽은 마주보는 이에게는 아주 정확히 오른쪽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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