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장애가 장애되는 장애인 프로그램의 현실

0
494
▲KBS 사랑의 가족_설악산 지게꾼의 부정(父情)/ⓒKBS 사랑의 가족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어느 늦은 밤 TV 채널을 옮기다가 우연히 KBS의 장애인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을 보게 됐다. 지적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시설에 보낸 설악산 지게꾼 부부의 이야기였다.
지게꾼은 지적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아내와 함께 살며 지게로 등산객들의 짐을 운반해 주는 일로 생계를 이으며 산다. 부부 사이엔 지적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하나 있지만 아들을 데리고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부부는 아들을 시설에 맡겨 놓고 아들을 그리워하면 산다.

아들에게 줄 과자를 사 들고 두 부부가 아들을 만나러 간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 PD가 그 부부의 서른일곱 살인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순간 이런 질문이 서른일곱 살의 성인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질문인가? 싶어 잠시 멍해졌다. 또 장애를 가진 아들을 시설에 보낸 장애인 부모의 아픈 상황을 그리움과 미안함이라는 감성적인 언어로 포장해서만 될 일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아들과 함께 살 꿈을 꾸며 힘겨운 삶을 견디는 장애인 부모로 미화하거나 어느 개인 가정의 안타까운 사정으로만 그릴 것이 아니라 이 가족이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관련 단체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고작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한 개인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장애가 장애 되도록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회의 문제를 묻고 되짚어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장애인 프로그램으로서의 이름값을 갖는 것은 아닐까? 보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그뿐인가. 어느 날 우연히 본 ‘사랑의 가족’ 예고편에서는 ‘장애와 좌절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는’ 누구누구를 소개해 주겠다는 내용이 예고되기도 했는데 이후로도 종종 우연히 만나지는 방송내용들은 거의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여전히 ‘꿈을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고’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주고’ ‘장애를 이기고’ ‘기적을 만드는’… 장애를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한껏 힘들고 불행하게 덧칠해서 장애를 ‘장애 되도록’ 최대한 강조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이라고 좀 다를까. ‘함께 하는 세상 만들기’, ‘내일은 푸른하늘’과 같은 프로그램은 KBS 3라디오의 대표적인 장애인 프로그램으로서 지금까지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이라는 오랜 명목을 유지해 온 프로그램들이다. 그런 명성답게 이 프로그램들은 장애인 청취자들에게 깊이 다가가 공감을 얻고 있을까.

우선 그 내용은 둘째치고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이 방송 접근권에 관한 문제이다. ‘내일은 푸른하늘’은 지난해 KBS 1라디오에서 내보내던 재방송을 예고도 없이 중단해 버림으로써 오랫동안 KBS 1라디오를 통해 재방송을 청취해 오던 시각장애인 청취자들의 많은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또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청취하던 책 읽어 주는 프로그램 역시 뚜렷한 이유 없이 폐지해 버리는 등 방송 소외 계층을 위한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무색케 하는 편성과 폐지 조치들을 이어 왔다.

이와 같은 문제는 TV 프로그램인 ‘사랑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주시청 시간대에서 한참 벗어난 목요일 오후 1시로 편성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의 지속적인 항의가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모두 내용은 둘째치고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색깔 없는 장애인방송

소위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으로서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야 하는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그 프로그램의 대문 격인 ‘오프닝’일 것이다. 오프닝과 클로징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과 특징을 규정하는 제작진들의 견해와 의도가 담기는 가장 상징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부분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으로서의 색깔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좋으니 산책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부터 또 어떤 날은 건강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이야기까지… 이런 오프닝은 사실 다른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장애인 시청취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도 있는 이야기다. 활동지원이 충분치 않은 중증장애인에게 날씨 좋으니 산책해 보라고 권하는 상상을 해보라. 그러면 그 순간 중증장애인에게 그런 얘기가 왜 슬프게 들리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화장실이 불편해서 물을 많이 마실 수 없는 중증장애인에게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상상해 보라.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장애인 프로그램이라면서 그 정도도 시청취자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해 장애인 시청취자들이 어떤 공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사람을 일일이 고려하고 방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방송을 듣거나 보고 있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좀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건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도 나를 고려하지 않았단 말이야?…
적어도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이라면 장애인 시청취자들로부터 이런 항변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배려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장애인 프로그램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적해 주는 목소리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비장애인 입장과 시각에 맞춘 프로를 만들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더 장애당사자적 관점은 희미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
적어도 장애인 프로그램만큼은 장애당사자 입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고 장애에 대한 사회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송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고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장애인 프로그램이라면서 가장 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상화하는 프로그램이 지금의 장애인 전문프로그램의 현주소라면 이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때 아닌가.

장애인은 결코 장애와 좌절을 극복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그냥 사는 것뿐이다.
장애인은 뭐 맨날 그렇게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그리고 써야 하나.
또 왜들 그렇게 자꾸 장애인의 삶에서 꿈과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안달들인가.

“아, 저들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사지육신 멀쩡해서 뭔들 못 하겠나”…

고작 이 정도의 값싼 자기 위안과 가짜 희망을 주자고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으며 장애인을 대상화해 얻는 감동추구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은가. 장애에 대한 판에 박힌 생각들과 낡은 표현들은 과감히 걷어내고 잘라내는 노력과 새로운 시도를 보여줘야 할 때, 장애를 장애 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차갑게 지적할 수 있는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할 때이다.

그 목소리 당신이 들려주세요!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승인
알림
662ba2b74cc6f@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