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키위 ③_나는 계산대에서 장애 브리핑을 한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계산대와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계산대와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김진영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

“죄송합니다만 제가 시각장애가 있어서 그런데, 메뉴를 좀 읽어주실 수 있을는지요?”
“아, 정말 죄송한데 혹시 주스류에 뭐가 있었는지 한 번만 더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진영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

나는 오늘도 구구절절 계산대 앞에서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심지어 메뉴를 고민하는 사이 미처 듣지 못하고 놓쳐버린 메뉴를 다시 묻기까지 했다. 민망함이 불쑥 고개를 들었으나 얼른 미안한 웃음으로 어색함을 덮었다.

이 글은 거대담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인식론적이거나 사회과학적이지도 않다. 정확히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삶에는 인식론의 개념을 빌어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단순하게 사실 그 자체로 종결되는 차원의 것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계는 사람을 대체한다. 기계는 지속적으로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에 비해 전기를 필요로 할 뿐 많은 자본을 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당수의 식당은 키오스크를 도입했고, 그 속도는 앞으로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대면에 관한 공포 내지 불확실성을 각오해야 하는 코로나19 시대는 그 변화를 비가역적인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키오스크가 터치로 작동될 뿐 아니라 화면을 읽어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전맹(시력이 전혀 없는 사람) 또는 상대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은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글씨 크기가 작거나 읽어주지 않는 터치스크린을 사용할 수 없다. 터치스크린에 밑줄을 칠 것이 아니라 ‘글씨 크기가 작거나 읽어주지 않는’에 주목하기 바란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폰 유저이다. 아이폰은 터치폰이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읽어준다.

사실 나는 여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고객은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매장에서 제공하는 주문 시스템을 통해 주문 및 결제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그뿐이다. 나는 고객이고 식당 및 카페는 서비스 제공자니까. 그 이상의 논리는 매우 부가적인 것에 속한다. 상점에서 먼저 키오스크를 내밀기에 나는 이 시스템으로 주문과 결제를 진행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나의 항변에 여러 가지 대안 및 의견을 내놓는다. 사정을 설명하고 가게 주인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한 사람의 시각장애인 고객을 위해 키오스크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라는 거냐, 계산대를 겸하는 식당도 있지 않느냐 등. 여러 대안에 구구절절 답변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는 식당과 카페에 음식을 먹으러 간 것이지 장애를 설명하러 간 것이 아니다. 하루 두세 끼를 식당에서 먹고, 카페에서 1~2회 후식을 먹는다고 치면 나는 무려 나의 장애를 최소 3번에서 최대 5번까지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 듣는 식당 주인은 그때마다 달라지지만 설명하는 이는 동일하다. 나는 안타깝게도 기기가 아니어서 같은 것을 여러 번 설명하고 있노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회의감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대는 참으로 잔인하다. 물론 존중한다. 그러나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둘째,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에는 시각장애인이 무수하게 많다. 애플은 그럼 이익을 추구할 줄 몰라서 화면을 읽어주는 기능을 선도적으로 넣었을까? 식당에 키오스크 시스템이 있어서 시각장애인이 그 식당에 방문하지 않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시각장애인이 방문하지 않아 키오스크에 읽어주는 기능을 삽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우리는 인과관계를 보다 엄밀하게 살펴야 한다. 더구나 높이가 높은 키오스크는 어린아이나 휠체어 사용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셋째, 계산대를 겸하더라도 키오스크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굳이 계산대로 향할까? 아니면 기기에 카드를 꽂아 넣을까? 나는 기기가 읽어주는 메뉴를 들으면서 음식을 빠르게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기기에 몇 번이고 다시 읽어달라며 미처 듣지 못한 것은 한 번 더 읽어보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누리고 싶다.

계산대에 있는 직원과 마주하면 내 속도를 즐길 수 없다. 아울러 계산대에 항상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현재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한 상태, 그러니까 사람이 그곳에 있는지 아닌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넷째, 농담처럼 덧붙이는 말이지만, 나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요청에 성실히, 정성껏 응하는 시민이고 싶을 따름이다. 이왕이면 대면으로 주문하는 것보다는, 우아하게 알코올로 손을 소독하고 키오스크의 매끈한 화면에 손을 얹어 주문을 한 뒤 다시금 손을 깨끗하게 닦는 게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좋지 않겠는가.

구구절절 브리핑하고 싶지 않았으나, 결국 나는 오늘도 설명하고야 말았다. 언젠가 어느 키오스크가 내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 비로소 나는 키오스크의 완벽한 고객이 될 것이다.

“나는 고객이고, 너는 가게에 설치된 키오스크야.”

김진영
연세대학교 로스쿨에 재학 중인 전맹 시각장애인이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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