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쳐 토크] 특이하거나 특별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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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스틸컷. 사진=네이버 포토
▲마루 밑 아리에티 스틸컷. 사진=네이버 포토
  • 애니메이션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The Borrowers), 2010>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설탕통에 넣어둔 각설탕 몇 개, 반짇고리에 무심히 넣어뒀을 단추 몇 개나 손톱깎이 같은… 딱히 품목이나 수량을 손꼽기도 애매한 물건들이 사라지는 일을 누구나 종종 경험할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내가 부주의했겠거니, 내 착각이겠거니 대충 흘려버릴 텐데 어떤 상상력은 그 사소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주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로 탄생시킨다.

<마루 밑 아리에티>가 바로 그런 상상력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요양차 할머니 집에 온 소년 쇼우와 그의 집 마루 밑에 사는 소인족 소녀 아리에티의 조우와 우정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려낸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작이다.

원제는 ‘The Borrowers’, ‘빌리는 사람들’이다. 아리에티와 그의 가족들은 멸종해 가는 소인족으로 인간의 집 한켠에 기거하며 인간의 물건을 몰래 가져다 쓰는데, 그들은 그것을 ‘빌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빌리는 사람들’. 그러나 그것이 ‘훔치는 것’인지 ‘빌리는 것’인지 혹은 그냥 ‘주는 것’인지는 상대가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쇼우에게 아리에티와 그 가족은 특별하다. 아리에티와 그 아빠가 각설탕과 휴지를 빌리러 온 날 처음으로 그 기묘한 존재를 맞닥뜨린 쇼우는 그 독특한 존재들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친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러나 쇼우의 집안 살림을 돌보는 가정부 하루 아줌마는 쇼우와는 다르다. 그녀에게 아리에티 가족은 특이하다. 그녀에게 그들은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그저 인간에 빌붙어 쥐나 다름없이 인간의 물건을 ‘훔쳐서’ 사는 기생적인 존재다. 집안 대대로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인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녀는 그 ‘특이한’ 존재들을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 무엇도 평화로운 인간의 세상에 해가 되지 않도록 박멸하거나 퇴치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다.

쇼우의 할머니는 또 다른 입장이다. 그녀는 그저 말로만 들어오던 전설적인 존재들과 막연한 공존을 그릴 뿐 손주의 건강 말고는 다른 것엔 달리 적극적인 관심도 없다.

특별하거나 특이하거나 아리에티와 그 가족을 위협하는 건 바로 이 두 가지 시선이었다. 아리에티 가족을 ‘특이하게’ 여기는 하루 아줌마의 시선이 위험한 것은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아리에티의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를 사로잡아 곤충채집 하듯 병 속에 가둬놓고 해충 박멸업체를 통해 아리에티 가족을 없애 버리려던 그녀의 방식은 아리에티 가족을 먼 곳으로 도망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위협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아리에티와 그 가족을 향한 호의적이고 우정어린 쇼우의 ‘특별한’ 시선은 왜 문제였을까.

쇼우는 이 특별한 존재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것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가 되고 싶었다. 자신이 베푼 호의에 기뻐하는 아리에티를 보고 싶었다. 쇼우에게는 그의 할아버지가 언젠가 만날 소인 가족들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인형의 집이 있었다. 특히, 별도로 더 신경 써서 만든 인형의 집 부엌에는 소인 가족을 위한 온갖 아기자기한 부엌 소품들과 식기들, 근사한 오븐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쇼우는 그 부엌을 아리에티 가족을 위해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쇼우의 그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날 아리에티 가족은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의 시간을 직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온 집안이 뒤흔들리며 정든 부엌이 한순간에 뽑혀 나가고 새 부엌이 내려앉는 모습을 망연자실 지켜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기쁨은커녕 공포였다.

새로 생긴 부엌은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숨겨 왔던 자신들의 존재를 들켜버린 두려움과 언젠가는 헌 부엌처럼 그렇게 뽑혀 나갈지도 모른다는 자명한 공포가 더 이상 그들을 그곳에 살 수 없게 했다.

쇼우의 빗나간 호의 때문에 아리에티 가족의 존재는 결국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쇼우의 호의와 우정은 믿지만, 하루 아줌마처럼 그들을 ‘특이하게’ 바라보고 위협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는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위태롭게 주전자를 타고 강물을 따라 떠나는 아리에티 가족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세상의 수많은 아리에티들이 특별하거나 특이하지 않고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크리스마스의 계절에 이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며 이런 얘기들을 나누면 좋겠다. 모든 날이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는 더욱,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존재 그 자체로 그답게 모두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날 아닌가.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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