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6억 소송’과 미국 장애인 이동권 전사(戰士) 헤일 주카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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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6억원 소송과 미국 장애인 이동권 전사(戰士) 헤일 주카스의 삶
▲휠체어 탑승용 안전발판을 방패로 사용하는 경찰(왼쪽)과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헤일 주카스 - 2023년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전장연을 상대로 6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1979년 미국은 도심의 보도를 깨뜨리는 '연석 절단' 투쟁과 시내버스를 멈추게 할 만큼 격렬했던 대중교통 접근 투쟁을 주도한 헤일 루카스를 '미국 건축 및 교통장벽 준수 위원회(ATBCB) 위원으로 임명하고 장애인 접근성 개선 활동을 인정해 대통령 표창까지 했다. ⓒ 더인디고 편집(가디언)
  • 오세훈 시장, 전장연에게 민·형사상 책임 묻겠다며 6억 손배소 제기
  • 미국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등 민권운동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받았던 헤일 주카스
  • 두 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쟁취 운동 결과, 통제와 손해배상소송 vs 대통령 표창
  • 1980년대 미국의 장애인 민권 투쟁… 2023년 한국 서울에서는 소송으로 재현되다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서울교통공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상대로 6억 145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영국의 더가디언은 미국의 대중교통수단과 도시 접근성을 위해 투쟁했던 장애인권운동가 헤일 주카스(Hale Zukas)의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냈다.

▲헤일 주카스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다. ⓒADA Pioneer 갈무리

지난해 11월 30일 버클리병원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한 헤일 주카스는 평생을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미국의 대표적인 장애인권운동가다. 더가디언은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시설에 수용되었던 시대에 대중교통 수단 접근성을 위해 싸워 승리한 전사”라는 표현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저 빠르고 자유로워지길 원했던 헤일은 헬멧에 묶인 막대기로 조종되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도발적인 도전을 감행했다.

1943년 중증의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헤일은 의사의 시설 수용 제안을 거부한 어머니 덕분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당시 장애인들은 여전히 시설 수용에 큰 두려움을 가졌는데, 특히 헤일처럼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설 수용이 국가가 제공하는 유일한 복지였던 셈이다.

▲언어장애가 심했던 헤일 루카스는 휠체어 앞에 문자판을 헬멧에 달린 막대로 짚어 의사소통을 했다. ⓒ 더가디언 갈무리

심한 언어장애로 휠체어 앞에 설치된 판자에 있는 글자를 머리 스틱으로 가리키며 의사소통을 했던 헤일이 독립생활센터를 설립하고 초기 목표로 정한 것이 바로 이동권이었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버클리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 제거를 위해 헤일을 비롯한 ‘장애전사들’은 매일 밤 망치와 끌을 이용해 보도의 단차를 부수고(curb cuts) 조잡하게나마 경사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현장 투쟁은 마침내 버클리시의 협력을 얻어내 곳곳에 경사로 설치를 이뤄냈다. 또한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악명 높은 리프트가 설치되었던 시내 고층버스들이 안전한 탑승 설비를 갖출 것을 제안하고 수년 동안 접근성 위원회에 새로운 버전의 버스모델을 제안하고 함께 테스트했다. 현재 헤일이 제안한 버스 탑승 경사로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더가디언은 전했다.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건물을 점거해 26일 동안 농성을 벌인 역사적인 투쟁과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중교통 이동권 시위에 참여해 그레이하운드 버스 범퍼에 몸을 묶고 농성했고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재설계하여 양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애인 권리 쟁취라는 정치적 요점을 전달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현장으로 나섰던 헤일은 워싱턴 DC와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주 의회 의사당에서 가장 활발한 로비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79년 카터 대통령에 의해 미국 건축 및 교통 장벽 준수 위원회(ATBCB, 현재 액세스 위원회)에 임명되어 장애인 접근성 개선에 힘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0년 미국 장애인법(ADA) 제정을 위해 현장으로 돌아온 후 “장애는 비극이 아니라 엄청난 골칫거리”“비장애인은 일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위트있게 투덜댔다는 헤일의 일생에 대해 더가디언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과 더 나은 도시설계를 위해 싸운 반군의 놀라운 삶”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제8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하는 매력적인 서울을 선포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서울은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도시가 되었다. ⓒ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며 남긴 방명록

한편 지난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장연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재작년 12월부터 1년간 75차례 시위로 인해 손해 본 운임 4억 3천만 원과 안전요원 투입 등 비용 1억 6천만 원을 배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장애계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2022년 11~12월 두 달간 탈선, 화재, 작동 오류 등 총 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 10년(2012~2021)간 평균 11건 발생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치”라며, “이에 따른 지하철 이동과 탑승에 불편을 겪은 서울시민들의 손해를 서울교통공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 이동권 요구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비판했다.

헤일 루카스가 미국 장애인의 대중교통과 보도의 단차를 없애는 등 접근성 개선을 위한 투쟁으로 카터 대통령에게 표창을 받았다면, 전장연은 같은 이유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6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셈이다. 1979년의 미국과 2023년의 한국이 장애인 이동권에 대응하는 풍경은 전혀 다른 색깔이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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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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