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준비 없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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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앉아있다.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임신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 13주 차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엄마는 당황한다. 심장도 약하고 뇌수종까지 겹쳐 사산의 위험과 장애를 갖고 태어나도 오래 살지 못한다고 의사는 말한다.

임신중절을 권하는 사회에서 아기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고뇌가 담겨 있는 책, 독일의 저널리스트 ‘잔드라 슐츠’의 ‘엄마는 너를 기다리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어’ 내용이다.

내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상황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가 책 읽는 동안 무질서하게 아른거렸다.

누군가처럼 어떤 아기든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태교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마다 사건 사고에 대한 수용 능력이 다르고 주위의 부정적인 말을 듣다 보면 갈등과 번뇌가 끊이질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마흔 살의 조카가 임신을 했다. 조카와 태아의 건강이 안 좋아 입원을 자주 하는가 싶더니 조산을 했고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에도 그저 잘 견디다가 퇴원하기만을 조카 부부는 바랐다.

하지만 아기는 생후 70여 일을 고생만 하다가 떠났다. 온몸에 의료기기가 매달려 한 번도 똑바로 안아보지 못했던 아기를 조카 부부는 숨을 거둔 후에야 안고 오열했다.

조카는 아기에게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나중에야 알았다. 아기가 위급할 때는 제발 살아만 달라고 애원했다가 좀 좋은 상태일 때는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오로지 살아만 달라고 아기에게 힘을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위로한답시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이 살기엔 너무 고통스럽다고, 차라리 잘 됐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내가 낳은 아들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자폐성장애인이다.

돌 무렵까지는 말귀를 잘 알아듣고 상호 작용도 어렵지 않았으며 그 연령의 아이들이 하는 귀여운 행동을 잘 보여 주었다. 하지만 돌을 넘기면서 고집이 늘었고 툭하면 자지러지게 울었고 의미 있는 단어는 전혀 말하지 못했으며, 특정 물건에 집착하고 장난감을 일렬로 나열하거나 자신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등 자폐적 증상이 나타났다.

아들이 생후 17개월될 때부터 나의 인생은 달라졌다. 아이의 그림자가 되어 둘이 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야 했다.

아기를 자신의 몸에 지닌 채 마음고생이 심했던 잔드라 슐츠와, 나는 빨빨거리며 온갖 저지레를 일삼는 아들을 안고 업고 손잡고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각자가 수용하는 힘듦의 크기가 달랐을 뿐 엄마로서의 고뇌는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꼈다. 누구든 자신에게 어떤 난관이 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며 그 일상에 충실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잔드라 부부가 임신 중에 했던 수많은 고민을 나는 아이를 보고 만지고 부대끼며 했고, 사회 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는 독일과 오로지 가족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만 다를 뿐이었다.

다시는 못 볼 거라던 아들의 예쁜 짓은 끝이 아니었다. 아들은 사실 귀엽고 예쁜 짓을 하면서 성장했지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내가 그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한숨 돌리고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격체로 대하다 보니 아들이 사랑스럽다. 아들 때문에 내 인생이 꼬인 것이라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만큼 살아내고 보니 이제는 아들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아졌다. ‘때문에’가 ‘덕분에’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과 인고의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지금 상황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은 대단한 축복이다.

아들과의 인연이 준비 없는 만남이었어도 퉁탕거리며 잘 살아내고 있음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날에는 우리도 다른 가족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아픈 아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가족에게 평범함이란 지금 이 순간이 괜찮다고 의식하는 삶이다. 또한 어느 정도는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보통의 삶이다.’

그렇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얻어지는 게 아닌 노력의 결과로 받는 평범한 삶, 그게 우리의 행복이다.

세상 모든 장애인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잔드라의 딸 ‘마르야’가 건강하게 잘 자라 훗날 그녀의 멋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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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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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ung7@hanmail.net'
오민웅
3 years ag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famina@naver.com'
famina
3 years ago

시간이 갈수록 더 잘쓰시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womyn5@naver.com'
이영실
3 years ago

글 잘 읽고갑니다~ 가수 이상우씨가 한동안힘들었지만 발달장애 아들이 자신에게 준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던말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