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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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I am sorry)
미안하다(I am sorry)/ⓒunsplash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거기 장애인이 우리 학원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확 달려들어서 아이가 깜짝 놀랐어요. 그러지 말라고 주의 주세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의 자조모임 선생님은 일단 사과부터 하고 어떤 상황인지 CCTV를 함께 보았다.

학원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복도 한쪽에 서 있던 아들이 평소 하던 습관대로 손을 흔들며 그들 지나간 자리로 발을 떼었다. 키가 작은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들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교사는 고개를 돌려 아들을 힐끗 보고는 그냥 학원으로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아들의 시선은 전혀 그들에게 가 있지 않았다. 그들이 지나간 후에 아들이 움직였던 상황이었음에도 학원의 과한 항의는 억울했다. 아들은 평소 엄마와 동행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면 내가 나서서 ‘놀라셨나 봐요, 악의 없이 하는 행동이니 이해해 주세요’라며 먼저 사과한다. 그럴 때면 ‘아니에요, 괜찮아요’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날따라 볼 일이 있어 아들 먼저 올려 보냈더니 그새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자폐인 아들이 자조 모임을 하는 장소는 번화가 상가건물이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등 초등생이 많이 출입하는 곳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용하는 치료센터보다 더 늦게 입주한 이 학원의 몇몇 교사들이 성인 장애인을 비뚤게 보는 점이다. 물론 아들의 경우 덩치가 크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두 손을 들고 흔드는 상동행동(같은 행동을 지속해서 반복하는 행동)이라든지 본인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에 지나가는 사람이 흠칫 놀라는 일도 있다. 이해한다. 자신이 해코지 당할까 봐 멀리 피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불쾌감을 표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을 과대 해석하고 비난하는 투의 주의를 부탁할 때는 적잖이 억울하다.

가족 대화방에 동영상을 올렸다. 심각한 표정의 딸이 내 손을 잡으며,

“엄마, 불쾌하겠지만 그 선생님이 놀랐을 수 있었겠네. 타이밍이 공교롭게 그래서 하진이가 억울하겠지만 그 선생님 입장도 생각하자.”

“뭐? 그럼, 말을 똑바로 했어야지! 선생님이 놀란 것하고 아이가 깜짝 놀란 건 다른 거잖아!”

나는 언성을 높였다. 서재에 있던 남편이 놀라서 나왔다. 한술 더 뜨는 남편.

“엄마보다는 우리 딸이 더 객관적이니까 너무 속상해 말고 흥분하지 마라.”

남편이 동영상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는 게 나는 더 화가 났다. 평소의 나를 빗대어 무조건 아들이 잘못한 걸로 말하는 것도 딸아이의 말만 믿는 것도 다 기분이 나빴다.

“영상 똑바로 보고 말하라고!!!”

나는 악을 썼다. 가족이 무조건 가족 편을 들라는 게 아니라 영상에 나타난 내용을 자세히 봐주길 바랐는데 의외의 가족들 반응에 나는 흥분했다.

“평소 하진이 문제에 대해 당신은 좀 감정적이고 우리 딸내미는 이성적이라서 둘이 얘기하는 걸 듣다보니 엄마가 과한 면이 있어 보이네.”

어이없는 남편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영상 보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때서야 영상을 보는 남편. 인상이 확 달라졌다. 그 장면만 몇 번을 돌려서 보고 또 보더니 정색을 했다.

“이런!!! 당장 가서 영상 보여주고 우리 아들 억울함 풀어주자!”

라며 결국엔 오버했다.

엄마가 화나면 일단 몸을 피하는 딸은 자기 방에서 거실에 귀를 세우고 있었는지 남편의 반응에 바로 나와서는 내 손을 잡고 사과했다. 남을 너무 먼저 생각하고 동생과 엄마의 억울한 마음을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아들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것 같아 그제야 나는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장애인 가족으로 살면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우선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하는 게 몸에 밴 탓인지 그걸 딸도 닮은 게 서글펐다.

더 과하게 그 학원을 비난하는 남편의 너스레에 울고 있던 나는 웃고 말았다. 큰 소리가 오가다 웃음으로 바뀐 분위기를 느꼈는지 슬그머니 거실로 나온 아들의 표정이 얼마나 해맑은지 안쓰러움이 올라왔다.

며칠 뒤 자조모임 선생님은 상대 학원에 찾아가 과장된 항의에 대해 설명했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얇은 웃음으로 화제를 돌리며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조곤조곤 자폐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아들을 대변해 주었다. 장애인과 장애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항상 고개 숙이며 죄인처럼 살기를 바라는 비장애인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그 때마다 표현하면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이다. 참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이다.

아들의 양손 흔드는 행동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불안할 때, 기분이 좋을 때는 뜀뛰기까지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아들 특유의 행동이다. 과한 면이 있을 때는 제지하면서 다른 활동으로 전환하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순간적으로 할 때는 말릴 방법이 없다. 그 행동을 자주 보고 접해 본 사람만이 놀라지 않고 잠시 기다려 주면 멈추는 행동임을 잘 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그것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자폐인의 행동에 악의가 없음을 알아차릴 방법은 자꾸 접하면서 ‘아! 그렇구나, 저렇게도 하는구나…’로 봐 줄 수 있다. 그러니 장애와 비장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함께 놀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통합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다소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다가오면 놀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외모로만 판단하고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 거라는 예견은 옳지 않다. 자신이 놀랐다고 하여 그 이상의 나쁜 상상으로 애먼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선 안 될 일이다. 그런 억울함을 당하는 당사자와 그를 지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지나치게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의 눈빛을 봐달라고. 분명 해코지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인상 쓰는 엄마에게 아들은 정말 자신은 몰라서 한 행동임을 말하는 듯 ‘엄마, 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천진난만한 눈동자는 흥분하려는 나를 진정시킨다. 화를 내려다가도 침착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에게 무조건 호감을 가져달라고 바라진 않는다. 그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 사람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같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장애로 인해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다름의 정도가 많고 적음의 차이로 봐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은 절대 다르지 않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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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famina
3 years ago

멋진 글~~잘 읽었습니다~~잔잔하게 일상을 나열하면서 모두에게 생각거리를 주시는 글입니다 ~!
특히 마지막에
“우리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은 절대 다르지 않다~! ” 좋습니다~^^

서로 특성 다른! 같은 인간으로 봐달라~~!
눈으로 총 쏘지 마시라~!

Last edited 3 years ago by famina
lem72@naver.com'
이은미
3 years ago

아이쿠;; 영상이 그려지며 화가 나고 속상하면서 슬퍼지네요ㅠ
따님과 옆짝꿍님께서 다시 영상 확인하시고 표현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자조모임 선생님께서 조곤조곤 설명해주시고 대변해주셨다는 글을 읽으며 울컥했어요.

“장애인과 장애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항상 고개 숙이며 죄인처럼 살기를 바라는 비장애인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그 때마다 표현하면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이다. 참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이다.”

자꾸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에 속상해지네요. 미안해하기 전에 양해해주고, 몰랐던 걸 알려고 노력하며,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힘내보자고요~♡

copyrightlab@naver.com'
박정인
3 years ago

너무 잘읽었습니다. 마음이 짠하네요.오늘은 행복한 하루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