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클럽하우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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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앱/사진=더인디고
클럽하우스 앱/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거나 전에 없던 물건들이 만들어질 때엔 효율과 신속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존재는 무시되거나 존재가치의 왜곡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전 노동력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장애인들에 대한 마녀사냥도 “잘살아 보세!” 외치던 새마을 운동 때의 열악한 편의시설들도 그다지 큰 불협화음 없이 용납됐던 것은 다수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겐 새로움과 나아짐을 공유하는 것이 예외 없는 함께함을 고민하는 것보다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근에 만들어지는 터치 기반의 전자기기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겐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것도 접근성 보장되지 않은 건물의 설계가 휠체어 타는 이들에겐 삶의 불가능 영역이 된다는 것도 대부분 알지만, 암묵적 합의를 거친 다수에 의해 허락되고 그 범위를 넓혀간다.

따뜻한 배려나 소수자들의 포용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말하는 장애인 전용 전자제품이나 휠체어 접근 가능한 한두 곳의 백사장 따위를 만들고 공존의 아름다움을 논하지만, 여전히 소수성을 약자성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 대한 다수의 얕은 변명이고 합리화일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웹사이트들의 디자인도 또 새로 만들어지는 애플리케이션과 그와 함께 변화하는 대중의 문화도 시각장애인인 내가 함께하기엔 불가능하거나 버겁기만 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사용성 개선을 요구하며 겨우 적응할 때쯤엔 사진 기반의 인스타그램이나 영상 기반의 틱톡이 또 다른 대세가 되고 소수인 우리는 또다시 허우적거리며 따라가거나 익숙해진 포기를 선언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용하는 카카오톡의 업데이트조차 예측 못 할 접근성 변화로 불안해해야 하는 우리에겐 최신의 제품이나 콘텐츠 접근성을 고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허영과 사치에 가깝다.

새해가 시작되고 난지 며칠 안 되었던 지난달 일런머스크는 ‘클럽하우스(club house)’라는 또 다른 새로움을 세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전에 없던 형태의 SNS는 글로벌 인싸의 몇 마디 발언과 함께 급속도로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갔다. 기존 가입자의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도 없다는 높은 진입 장벽은 인플루언서의 인증이라는 의미를 더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에도 줄어들지 않는 신세계에 대한 욕구는 나에게 또 한 번의 도전을 부추기고 있었다.

더욱이 이번엔 시각장애인들에겐 지나칠 수 없는 음성채팅이었다. 다운로드 받은 앱은 언제나 그랬듯 가입하고 로그인을 하는 단계에서부터 나를 반겨줄 마음은 없다는 신호를 주고 있었다. 버튼엔 텍스트가 붙어있지 않거나 아예 보이스오버 사용자에게는 탐색조차 되지 않았다. 겨우겨우 끙끙거리며 들어간 이후에도 스피커로 참여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화면 구석을 더듬거리며 몇 번의 에러 메시지를 넘어서야만 가능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음성채팅 플랫폼은 시각장애인에겐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여러 방을 돌아다니면서 나의 존재와 상황에 대해 알렸다.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어떻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는지부터 열심히 전파했다. 많은 분이 도와준 덕분에 며칠 지나지 않아서 접근성이 이전에 비해 훨신 좋아졌다. 부족하긴 했지만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다른 시각장애인들의 요구가 닿았는지 함께 하는 분들의 도움이었는지는 몰라도 ‘클럽하우스’라는 세상은 적어도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더 많은 방을 돌아다니면서 시각장애인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지켜주었으면 하는 에티켓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이야기 할 때는 이름을 말해주세요.”

“불빛이 반짝이는 것으로 박수를 표현할 때는 모더레이터께서 손뼉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면 좋아요.”

많은 사람이 동의해 주었고 몰랐던 것을 알려주어서 감사하다는 의례적인 인사도 받았다. 열심히 홍보했지만 이전의 경험 때문에 쉽게 바뀔 거라는 확신 같은 건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을 겪은 것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다른 방에서였다. 나 아닌 그리고 시각장애인도 아닌 어느 스피커가 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리스너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승준님을 만났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서 공유해 드리고 싶어요.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면 아주 작은 것들을 기억해 주시고 지켜주세요.”

다른 방에서도 또 다른 방에서도 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프로필 사진을 설명해 주는 문화도 생기고 더 나은 접근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도 생겼다. 점차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무언가 다른 이들과 동등한 경험을 누리고 있다는 감동 같은 것들이 밀려왔다.

그전엔 어느 공간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깊은 소속감마저 느꼈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클럽하우스’에 들어온 분들은 건강한 관계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도 역시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민도 섞여 있었다.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작점에서부터 소수인 시각장애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마주치기도 힘들었던 유명인들과도 거리감 없이 대화를 나누고 급기야는 수평어라는 이름으로 반말을 쓰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 배어있던 보이지 않는 모든 계급이 무너졌다. 나이도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초월한 유토피아적 평등이 펼쳐졌다. 어느 방이라도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이와도 대화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말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긍정적 변화로 나타났다.

나흘이라는 짧지 않은 연휴 동안 내가 마주한 신선한 충격은 나를 잠 못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클럽하우스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어 놓는 중이다. 아직 많은 논란이 존재하고 여전히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불편함에 놓여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변할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점이다.

내게 있어 이 공간은 충분히 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뜻한 목소리로 함께하는 전화기 너머의 하우스 친구들이 내게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전에 없던 진정한 평등의 공간! 이번엔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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