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혼걷이굿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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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쨍쨍한 여름/사진=픽사베이
햇빛이 쨍쨍한 여름/사진=픽사베이

어느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는 저녁 밥상을 물리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헌데 자정이 한참 지나도 여자는 물론 종석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여자는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서성이며 여자를 기다렸다. 그러다 마루에 앉아 깜박 들었던 졸음이 대문 삐걱이는 소리에 화들짝 깨었을 때는 동이 틀 무렵인지 사위가 희부윰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 앞에 여자가 어진혼이 나간 듯 망연한 얼굴로 가까스로 서 있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정지간으로 들어가 부엌칼을 쥐고 나왔다.

그 눔아가 미쳤는갑다. 이 에미를 몰라보더라. 목 터져라 부른께 희뜩 돌아보더니 그냥 어둔 골목으로 가버리는겨. 나를 보는 그눔아 눈빛은 종석이가 아니었어, 생판 모르는 남정네 눈빛이었다니께. 모두 네년 때문이여.

여자가 미친 듯이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너무 무서워서 여자는 대문 밖으로 도망쳐 나와 벽에 기대어 선 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 종석이 뜨악한 표정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을 등지고 서풋 다가왔다.

왜 울고 있어?

여자를 쳐다보는 걱정스런 눈빛이 가뭇없이 웅숭깊었다. 여자는 앞에 우뚝 서 있는 그를 올려다봤다. 한 뼘이나 작았던 종석의 키가 어느 틈에 머리 하나가 훌쩍 더 커졌다는 사실에 여자는 새삼 놀랐다. 울음을 삼키며 엉얼거리는 그녀를 종석이 덥석 껴안았다. 화들짝 놀란 여자가 그의 가슴께를 밀쳐내려고 하자 허리를 감싼 팔을 더욱 옥죄어왔다. 종석의 뜨거운 입술이 여자의 젖은 뺨을 간질였다.

– 울지 마.

그 후 중석은 일체의 외출을 삼갔다. 무더운 여름 한낮을 제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보냈다. 그제야 여자는 안심이 된다는 듯 평안한 낯빛으로 굳게 닫힌 종석의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평온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한낮에는 그냥 앉아있기도 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여자는 발을 담그고 있던 대야의 물이 미지근해지자 물을 다시 받아올 요량으로 마당으로 나아갔다. 쿨렁쿨렁 펌프질을 하자 차고 맑은 지하수가 쏴르르 쏟아졌다. 발을 담그고 있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목물을 하면 어떨까 싶어 사방을 휘둘러봤다. 마침 집안은 텅 빈 듯 적요했다.

여자는 한 시간 전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밭으로 나갔고 종석도 역시 나갔는지 삐주름히 열린 방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얼른 대문의 빗장을 질렀다. 그리고는 소매 없는 셔츠와 브래지어, 반바지를 벗고는 물을 바가지로 퍼 머리 꼭대기부터 뒤집어썼다.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물이 시렸다. 매끈하게 드러난 살갗에 소름이 좍 돋았다.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마당에 가득했고, 매미 우는 소리가 와글와글 귀를 먹먹하게 하는 여름 한낮이었다. 피부에 착 달라붙어 엉기는 느낌이 싫어 젖은 팬티마저 벗어버린 여자는 다시 찬물을 와락 뒤집어썼다.

그렇게 얼마를 더 지체했던가. 자꾸 꼭뒤를 지르듯 뒷머리께가 뜨끔거려 왔다. 누군가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섬뜩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젖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와락 제키고 마당을 휘둘러봤다. 담 밑으로 우후죽순 핀 붉은 맨드라미들이 꽃대궁을 흔뎅거리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길이 장독대 밑에서 한 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장독대 위를 올려다봤다. 아, 거기에 그가 있었다. 벌거벗은 구릿빛 몸뚱이를 그대로 햇발에 드러낸 채 꼿꼿하게 서 있는 종석의 상기된 눈길이 여자의 나신(裸身)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앞섶을 여며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방심한 자세로 종석을 쏘아보았다. 그 역시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바라보는 거였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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