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쳐 토크] 기적이 아니라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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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적신기소자 예고편ⓒ마마적신기소자|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마마적신기소자 예고편ⓒ마마적신기소자_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 영화 <마마적신기소자(妈妈的神奇⼩⼦: Zero to Hero)>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어느 휴일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 채널을 고정했다. 전신마비로 누워서 꼼짝 못 하던 아버지가 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그 아버지는 화면 속에서 딸의 부축을 받으며 서툴게 걷고 있었다.

딸은 아빠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혹독하게 재활훈련을 시켰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진 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시켰더니 놀랍게도 전신마비였던 아버지가 일어서서 걷게 되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왜 문득 마음이 착잡해졌을까.

홍콩 영화 ‘마마적신기소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신생아 황달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어린 아들 소화위를 일으켜 걷게 하는 엄마의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뜨거운 연기가 피어오르는 용액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옷감 컨베이어 벨트 위에 아들을 앉혀 놓고 공포에 질린 아이에게 엄마가 무섭게 외친다. “걸어!! 걸으라고!!”

그다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세상에나 마비로 평생 걸을 수 없다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일어서 걷는다. 공포 때문인지, 초능력 때문인지, 엄마의 절망 때문인지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아이가 이윽고 난간을 붙들고 일어나 걷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단지 영화 속 기적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영화는 실화다. 물론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되었겠지만.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육상 200m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홍콩 장애인 육상선수 소화위(苏桦伟)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모질고 혹독하게 재활훈련을 시키면, 절벽 아래로 새끼를 던진다는 맹수의 비법처럼 가혹하게 극단으로 몰아넣으면 걸을 수 없는 장애인도 숨은 초능력이라도 끌어올려 정말 극적으로 일어나 걷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간절한 이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무책임한 판타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상처와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누구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가, 누구는 그만큼 사력을 다하지 않았나, 누구의 피땀은 그만큼 진하지 않은가… 간절함과 열심의 총량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확률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마적신기소자’라는 제목부터 이미 기적을 내포한다. 소화위는 그 엄마에게 있어 신기소자(神奇⼩⼦), 즉 신기하고 기묘한 아이, 기적의 아이인 것이다. 기적처럼 일어선 소화위는 나중엔 기차보다 빨리 뛰는 소년이 되었다. 16살인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에서 4×100m 계주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년, 2004년, 2008년 무려 4회 연속 금메달을 딴 홍콩의 대표적인 장애인 육상선수가 되었다. 그뿐인가, 육상 200m 부문의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얼마나 기적 같은 이야기인가? 이 영화에서 이런 기적을 만든 것은 소화위가 아니라 바로 그의 어머니다. 의사에게 평생 걷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혹독한 재활훈련으로 아들을 일으켜 세운 엄마, 헌신적인 돌봄으로 아들을 세계 신기록 보유선수로 만든 훌륭한 엄마가 바로 그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소화위가 아니라 그 엄마인 셈이다.

훌륭하기 짝이 없는 이 엄마의 시간은 아들 소화위를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심지어 둘째 아이를 낳는 일도 나중에 부모 대신 소화위를 돌봐줄 형제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계획한 일이었다. 소화위 엄마에 비하면 삼천지교의 맹모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엄마 뒤에서 소화위는 과연 행복했을까. 평범한 아이들보다 특출난 아들이 되어주길 바라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야만 했던 소화위.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현재의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했는지. 그 부채감과 죄책감 때문에 더 열심히 달려야만 했고 비로소 기차보다 빨리 뛰는 사람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열심히 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생에 더 많은 것들은 한 번의 기적보다 수많은 기회를 통해 얻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바라는 기적을 위해 뛰는 동안 소화위는 좋은 형이 될 기회도, 짝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고백할 기회도 잃어버렸다. 아들을 위한다는 엄마의 과도한 열심이 아들이 누려야 할 작은 기회들마저 잃게 했다.

“제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걸 늘 엄마가 상기시켜 주시네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택배 일을 하던 소화위가 다시 뛰라고 종용하는 엄마에게 울먹이면서 외치던 말이다. 장애인이니까 힘든 너만큼이나 장애인의 엄마라서 힘들다며 엄마는 소화위를 설득한다. 그러나 장애인이니까 더 특별해야 한다는 말도, 장애인이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모두 ‘장애’를 상기시키는 말일 뿐이다. ‘장애인이니까’가 아니라 ‘너니까’ 해줄 수 있는 말들을 해야 했던 건 아닐까.

소화위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단 한 번의 기적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누릴 기회를 더 많이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세상은 그가 특별한 영웅으로서 더 특별한 삶을 누리기만을 강요했다.

“同工同酬(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소화위가 금메달을 딴 후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 간의 엄청난 포상금 차등지급을 두고 그의 엄마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외치던 말이다. 비장애인 선수와 동일하지 않은 장애인 선수의 포상금 규정은 장애인 선수들의 사기를 꺾어 운동할 기회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기회들이 어디 이뿐이랴.

누군가의 간절함에 대한 보답으로 기적 한 번쯤 일어나 주는 판타지가 뭐 그리 나쁠까. 그러나 그런 기적이 출중한 한 개인의 신화로만 그치고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할 많은 기회를 차단하는 기만의 구실을 제공할 뿐이라면 그런 기적은 더이상 아름다운 감동이 아니다.

누군가의 특별한 기적보다 그가 누릴 새롭고 다양한 기회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 시대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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